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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하여 3월26일 오전 9시 사강리 구장 홍효션의 집에 모인 120여명 주민들에게 독립만세 소식을 알려고 일경에 붙잡혀도 주모자를 발설하지 말 것을 설득하였으며, 각 마을에 연통 을 숙의하여 3월 28일 사강 장날 만세 시위을 계획하였다. 3월 26일 오후 5 시경에 송산면사무소 뒤 숲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왕광연, 홍영션, 홍동근, 복동, 홍준옥, 김교장, 김도정, 김용준 자경현, 진순익, 이순일, 이윤석, 최준보, 안순원,오광 득, 정군펼, 검병준, 김성실, 임팔용 등 200여명의 군중이 만세시위를 하였다. 이날 일경등 이 주동자를 잡아들이기 위해 홍면옥 홍효션등을 찾아다니자 이들은 구봉산으로 숨어들었 다. 3월 27일 육일리 굴고개 방향에서 전날 사강에서의 만세시위에 고무된 서신연 주민 4 00 여명이 태극기를흔들며 만세를불렀다. 이튿날 3월 28일 사강장날 (당시 3일, 8일), 이른 아침부터 평소와 다르게 경넌균들과 수 많은 마을 주민들이 두레농기를 앞세우고 장터에 모여 들자 사강주재소에서는 상점의 철시를 지시하였다. 이미 전날의 만세시위 소식에 술령이던 사람을중심으로오전 10 시경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오전 11시경 홍면옥등을중심으로 1 천여 군중이 국권회복을 위한 태극기를 지켜들고 조선독립 만세를 불렀다. 계속하여 서신 방면과중승리 방면주민들이 대한독립이라쓴깃발과태극기를들고모여와만세시위 군중 은 2,000여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일경들은 홍면옥, 이규선 예종구 등을 붙잡아 주재소에 무릎 꿇려 앉혔으나, 오후 3 시경 갑자기 홍면옥이 일어나 만세를 부르자, 일경 순사부장 노구치가 권총을 발사하여 어께 관 통J..}- 을 입었다. 성난 만세 군중이 주재소를 포위하여 돌을 던지며 만세 시위가 더욱 격해지 자 일경들은 총을 쏘며 군중을 해치고 자전거로 남양 방면으로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자전 거를 타고 달아나던 일본인 순샘장 노구치가 군중들이 던진 돌에 맞아쓰러지자 200∼300 여 명의 주민들과 홍준옥, 문상익, 임팔용, 강업동, 왕광연, 박영순, 김치연, 이주션, 예종구 등이 달려들어 돌과몽둥이로 처단하였다. 한편 노구치가 피살된 후 홍면옥은 장인 김명제, 동생 홍준옥 등과 인력거를 타고 총J..}- 을 치료하기 위해 남양의 한 병원으로 향하던 중 마도부근에 이르러 수원경찰서 급파된 순사부 장 겐타로 일행에게 체포되었다. 그 결과 엄팔용, 홍면옥 외 28명이 체포되었다. 홍효선, 전 도선, 이태순, 이석춘, 오경운, 예종구 등은 체포되지 않았으나, 5월 9일경 집으로 돌아온 전 도션, 안순원, 오경운, 이윤식, 김병준, 정군펄은 체포되었다. 132 1 언구조사보고서 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