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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사랑’을다시금 일깨워 줄수 있다. 과거의 아픈 역사의 전철을되새기고, 발판삼아자 신이 가꾸어가야 할 삶의 지표로 삼는다면, 그것이 비록 하찮은 과거의 흔적이라 할 지라도 소중한 자산이 되는 것이다. 하물며 내 조상아 참여한 곳에 세워진 ‘3 -1운동기념공원 및 기념탑’ 이야말로 참된 역사의 체험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5) 성역화 사업을 통해 지역의 관광자원 창출 안산의 가치는 새로운 것을 찾아 이미지화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잊혀진 역사에서도 우 리 션조들이 남겨놓은자산이 새로운것이 문화콘벤츠가될수있는것이다. 지역민오랜숙 원이자,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써 자랑스려운 삶이 되도록 하는 것도 시와 시민의 역할이 다. 인근의 전근대 유물 유적만 보호할 만한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내 아버지와 할아 버지가 그 현장에 있었다는 것도 기념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얀산지역 독립운 동가의 후손뿐만 아니라, 지역민의 자랑으로 삼아 길이 보존 계승한다면 새로운 관광자원으 로서의 가치는 충분한 것이 된다. 또 인근의 수리산과 연계된 산책내지 관광코스로 자리할 수있을것으로기대된다. 2. 기념비 건립의 적정 장소 3 · 1운동 당시 안산에서는 여러 곳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안산의 대표적 만세시위운 동으로 비럽동 만세시위, 거모리의 만세시위, 반윌 장터 만세시위, 대부면 독립만세운동 등 여러 곳에서 일어났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시위는 비럽동만세시위였다. 당시 시위 참가 인원이 약 2,000여 명 인데 그 인원은 당시 수암면의 성 인들이 거의 참여 할 정도로 많은 인원이다. 당시 시위대가 모여 만세를 외친 곳으로 보통학교(현 안산초등학교), 주재소, 향 교 등이 있었다. 이들 시위대는 이동을 하면서 만세를 불렀는데 이들이 처음 모인 곳이 바로 비렵동이다. 현재 그곳은 수암자동차공업사가 들어서 있어 과거 흔적을 찾을 수 없고, 당시 에 있었던 비석 (공덕비)들도 현 수암지구대 옆으로 옮겨져 있어 더욱 찾기가 어렵다. 다만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살려 현재 그곳의 도로명을 ‘만세길’ 이라고 명명해 놓았을 뿐이다. 그래서 그 역사적 사실을 이어가고, 현장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현재 안산시 상록구 수암동 만세길 근처 시립 어린이공원이 기념비를 세우기에 가장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그 공원은 과거 비럽동 바로 옆에 있으며, 만세길 옆 언덕 중턱에 세워져 있다. 그래서 위치적으로는 1261 연구조사보고서 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