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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방은 1919년 4월 경기도 화성군(華城郡) 우정면(雨汀面)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순국하였다. 1919년 4월 3일 아침 일찍부터 화성군 장안면(長安面) 석포리(石浦里)와 우정면 주곡리(珠谷里) 주민들이 합류하여 장안면사무소로 향하였다. 그리고 장안면 수촌리(水村里) 주민 100여 명도 독립만세를 연호하며 장안면사무소로 갔다. 오전 10시 30분경 장안면사무소에 모인 시위 군중은 면사무소 안으로 들어가 장안면장 김현묵에게 시위를 촉구하였다. 이어 시위 군중은 우정면사무소로 갔으나 면장과 서기들이 이미 도망치고 없자, 화수주재소로 이동하여 천단(川端) 순사의 총격에 대응하여 주재소를 불태우고, 천단 순사를 처단하였다. 4월 4일 새벽, 일본군 제20사단 39여단 78연대 소속 유전준부(有田俊夫) 중위가 이끄는 1개 소대 병력이 화수리(花樹里)를 포위하고 주민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다가 몽둥이질을 하였다. 4월 5일에도 수촌리를 포위하고 집집마다 불을 놓아 불길을 피해 뛰쳐나오는 주민들에게 사정없이 총질을 하였다. 특히 4월 10일부터 11일 화수리를 중심으로 25개 마을을 수색하여 200여 명을 검거하였다. 김연방은 1919년 4월 13일 일본 헌병에게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