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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을 주또한차병혁, 차병한등과는 일가였으며, 차희식 선생이 한 항렬 높은 어 른이었습니다. 차희식 선생은 동지인 장제덕, 장소진, 김흥식 퉁과 함께 행동대 로서 만세운동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차희식 선생은 1915년 도박죄로 태형 60의 처분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경성J랩법원에서 태형 판결을 취소 받고 징역 3개월의 집행을 마쳤습니다 그 후 가와바다 순사가 부임한 이래 도박을 하지 말라는 권유를 받았을 뿐만 아 니라 항상 감시를 받고 있었습니다 가와바다 순뿐 도박 단속 을 핑계로 통민들 늘 감시하며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차희식 선생은 차병한·차병혁과 함께 이영쇠 등에게 장안면 사무소에서 독립 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