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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63세가 되던 1919년 3월 20일 선생은 서울의 동지에게서 전달 받은 독립선 언문을 복사, 각지의 지도급 동지 %여명에게 전달하였고 1919년 3월말 발안장 터에서 벌써진 만세운동을 주도하였습니다. 당시 남자들은 백립(白쏠)이나 갓에 흰 천을 두르게 했는데 이는 국상에 대한 권위와 함께 독립운동에 호응한다는 뭇이었습니다. 이 날 7개 면민 1천여명의 군중이 모이자 선생은 시뛰대의 선두에 서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며 발안주재소까지 행진하여 갔습니다. 이때 대기하고 있던 경찰파 헌병들이 시위 군중들에게 총을 쏘아대고 선생의 배를 칼로 여러 번 무참히 찌료자, 선생은 쓰러지면서도 독립만세를 외치며 장렬히 최후를 마치셨 습니다. 정부에서는 공인의 공적을 기려 1991년에 애국장을 수여 독립유공자로 포상하였습니다. 현재 발안으로 들어가는 길목 한편에 선생의 순절을 기리는 창 의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 -도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