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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지역에 동학이 전파되기 시작한 것은 1862년 12월경 이칭-선이 경기도 접 주로 임명될 당시인 것으로 보입니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이 발생했을 때 남양 부민은 6월 28일 고을 관아를 습격하면서 봉기했습니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 로 탐관오리를 처벌하기 위해 정인식과 이군옥 등의 주도하에 일어난 항거였습 니다. 또한 우정 -장안면의 농민들도 수원의 고석주 접주가 거느리는 농민군에 가담하여 활약하다가 일본군과 관군에 패하여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렇듯 화성지떡의 민중들은 동학농민전쟁의 농민군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이러 한 역사경험은 천도교로 발전하면서 종교운동을 경기도의 어느 지역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번창시켰습니다. 동학의 제3대 교조 손병희는 15>05년 12월 1일, 동학의 정통을 계승하는 교 단으로서 천도교를 선포하였습니다. 천도교는 매국적 성격을 띠고 활동하고 있 는 일진회를 배격하면서 교세확대에 힘쓰며 문화계몽을 내걸고 애국계몽운동을 펼쳐나갔습니다. 천도교의 사상은 손병희가 강조한 ‘인내천’이 중심입니다. 인내천 사상은 ‘자기 마음을 스스로 깨달으면 그 몸이 곧 하늘이고 그 마음이 곧 하늙이다’라고 풀이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톰과 마음이 하늘이라는 것으로 사람이 곧 하늘 이라는 것입니다. 천도교의 기본적인 사상은 동학단계에서부터띄 인간존중이었 습니다. 천도」폐 발전 속에 수원교구와 남양교구가 두어지고 교인뚫이 늘어났습니 다. 천표교가 1914년 7월 대교구를 설립할 때 수원교구는 수원대교구로 승격되 었습니다. 이때 수원교구장 나천강과 남양교구장 김대식이 물러나고, 새로운 수 원군 대교구장과 수원군 교구장을 01종석이 맡았고 남양교구장은 한세교가 임 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