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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열사 김마리아(1892~1944) "대한의 독립과 결혼"한 김마리아는 일본 유학 중 2.8독립선언에 참여 후 독립선언서를 국내로 밀반입하여 3.1운동을 일으키는 데 일조하였다. 대한민국애국부인회 전국조직 활동으로 두 번의 옥고를 겪다. 가혹한 고문으로 인한 발병으로 병보석 치료 중 상해로 망명, 대한민국임시의정원에서 황해도 대의원에 선출되다. 국민대표회의(1923년 1~6월)에 참석, 임시정부의 개조 존치를 강력 주장하다. 1923년 미국으로 재망명하여 교포사회를 향해 실력양성으로 자주독립 이루자는 연설을 하며 독립정신을 고취하다. 1924~32년에 걸쳐 파크대학, 시카고대학원, 콜롬비아대대학원, 뉴욕신학교에서 수학학하고, 뉴욕에서 근화회를 조직하여 여성독립운동을 계속하다. 형기만료로 귀국 후, 일제의 거주제한 등으로 원산의 마르타윌슨여자신학교 교수로서 성경을 통한 애국정신 진작에 힘쓰다. 장로교전국여전도회 회장으로 활동. 신사참배를 거절하다. 1944년 순국한 선생은 대한독립의 진정한 영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