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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기 선생은, 충남 논산(論山) 사람이다. 1919년 3월 16일부터 3월 18일에 이르는 기간동안 충남 논산군(論山郡) 채운면(彩雲面) 심암리(深岩里)에 있는 이근석(李根奭) 가택에서 독립만세시위를 계획하여 태극기 300여 매를 제작하는 등 준비를 하고 동년 3월 20일 강경(江景)의 장날을 기하여 시장에 모인 수백명의 군중을 규합하여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하다가 피체되어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는 1926년 동아일보(東亞日報) 대전지국(大田支局)을 경영하였으며, 야학을 세워 교육사업에도 종사하는 등 민족운동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9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 출처 :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유공자 공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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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오 선생은, 충남 논산(論山) 사람이다. 1919년 3월 20일 논산군 강경읍(江景邑)에서 송재기(宋在紀)·이근석(李根奭)·이봉세(李鳳世) 등과 함께 3월 10일에 일어난 거사에 뒤이어 두 번째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계획, 태극기 360여개를 만들어 장터 부근의 옥녀봉(玉女峯)에 모인 1,000여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행진하며 독립만세를 고창하다 일경에 피체되었다. 같은 해 4월 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8월형을 언도받아 다시 상고하였으나, 5월 29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당하여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출처 :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유공자 공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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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석 선생은, 충남 논산(論山) 사람이다. 1919년 3월 20일 논산군 강경읍(江景邑)에서 송재기(宋在紀)·이근석(李根奭)·이봉세(李鳳世) 등과 함께 3월 10일에 일어난 거사에 뒤이어 두 번째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계획, 태극기 360여개를 만들어 장터 부근의 옥녀봉(玉女峯)에 모인 1,000여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행진하며 독립만세를 고창하다 일경에 피체되었다. 같은 해 4월 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8월형을 언도받아 다시 상고하였으나, 5월 29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당하여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출처 :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유공자 공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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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세 선생의 공훈 자료는 공훈전자사료관에서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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