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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4월30일 화요일 5 (제148호) 관향조 종친회 밀성재 춘향이 지난 7일(음3.3) 밀성 대군단과 익성사에서 전국의 후손 500 여명이 참례한 가운데 봉행되었다.이날 제향은 전일 입재하여 개좌를 열어 집사 를 분정하고 다음날인 오전 9시 개복(改 服)에 이어 본당에서 진국 전 대종회장 이 제례에서 지켜야할 홀 잡는 법, 합족, 절 하 는 예 (禮 ) , 제 례 절 차 및 예 절 등 당 부 사항을 전달하고 밀성재를 출발 대군 단에 도착 10시 정각 종춘(강릉인, 동해 향교 전교) 집례관의 창홀에 따라 재두 (사문진사공 后) 초헌관의 분향 전폐례 에 이어 헌작과철규(사문진사공 后)축 관의 독축,영호(사문진사공 后)현종의 아헌,성봉(구산군 后)청년회 지도위원 의 종헌, 음복례 망료례 등 40여분에 걸 쳐진행되었으며,이어 장소를익성사로 옮겨 밀성대군의 아드님인 삼한벽공도 대장군(휘 욱),손자 요동독포사(휘 란) 의 제향이 응상 집례관의 집례로 봉행하 였다. 밀성재는 지난 3월 정기총회에서 전 례위원회(위원장 용권) 구성안 추인을 계기로 이번 향사부터 본격가동하고 6 일 오후 3시 익성사 고유봉심과 제관 사 전교육을실시했다. 용권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밀성재는 우리 박씨의 종가(宗家)로서 시류에 따 라 변해가는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계승 하는데주력할것이라고말했다. 그리고 이번 개좌는 전례위원회 응상 간사의 사회로 용권 위원장이 주재하여 우선 직일을 추대하고 조사(曹司) 3명 (震局, 金市, 在漢)을 추대한 후 이들로 하여금 공사원(公事員)5명(壽太,炳燦, 載喆, 圭南, 淳九)을 선출 집사 분정을 마쳤다. 이날 밀성대군단의 오집사는 강원도 동해에 거주하는 일가분들을 천거하여 관 례 에 따 라 한 달 전 천 권 ( 薦 券 )을 보 내 정결한 몸으로 제례에 임할 수 있도록 하였다. 초헌관으로 헌작한 재두 회장은 사문 진사공 후손으로 지난해 12월 자랑스런 밀성인상(숭조부문)을 수상한바 있다. 투철한 숭조심으로 지역의 유림인들과 종중에서 신망이 두텁고,뉴 동해관광호 텔 창업주로 정도경영을 통해 안정적인 기반 속에 관광산업발전에 기여한 공로 등 150여개에 달하는 각종 공로패와 감 사패 그리고 각급 기관장의 표창장과 20 12년제39회관광의날수상한대통령표 창은그의행적을더듬어볼수있다. 한편 이번 대제에는 은산부원군 后 감헌공파 제주문중과 충헌공파 참찬공 경기화성문중에서 관광버스를 이용 대 거참석제례가더욱빛났다. 밀성재 춘향 봉 행 밀성대군,삼한벽공도대장군,요동독포사3代,전 례위원회구성후첫향사봉행븣전통문화보존및 계 승 에 최 선 다 할 것 제주도종친분들이 관광버스를이용 제례에참석제관들과 함께하고있다. ▶관련기사6면 박재두초헌관 박영호아헌관 박성봉종헌관 박종춘집례 박철규축관 박용권위원장 밀성재제관(휘욱/ 휘난)초헌관 해원/ 대병, 아헌관 순원/돌희, 종헌관 상경/수봉, 분헌관 정웅, 집례응상,축관 종식/을수順 밀성박씨고양선조원당종중회는 지난 4월 11일 1/4분기 원 로회의를 개최하여 고문 및 각 분과위원 18분이 참석한 가운 데본종중소회의실에서1/4분기원로회의를가졌다. 봉준회장이 주재한 이날 회의는 1/4분기 사업현황에 대한 보고 후 질의 및 문답식으로 회의를 진행하며 종중운영 및 회 원들의 근황을 설명하고, 금년도 사업에 대한 원로님들의 조 언, 5월에 있을 경로 효도관광행사의 행선지 및 일정도 결정 등의 의견을 교환하고 향후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적자운 영이 불가피할 것 같으니 집행부에서 묘안을 짜내어 수익성 있는사업을찾아보도록할것을주문했다. 원당 종중의 운영은 철저하게 원로분들의 의견을 존중한다. 즉노마지지(老馬之智)의교훈을따르고있어 봉준회장은이 날 인사말을 통해 더 건강하시어 종중 운영에 도움을 달라고 당부하고 오찬장으로 장소를 옮겨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정담을나누며식사를했다. /박봉준명예기자(경기고양시지부) 밀성박씨충헌공파경기도고양시원당종중회 2019년도1/4분기원로회의개최 일본에 볼모로 잡혀 있던 신라 눌지왕 의 동생 마사흔을 구하고 왜놈들에게 붙 잡혀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나는 계 림(鷄林)의 신하이다.나는 계림의 개나 돼지가 될지언정 왜국의신하는 되지 않 을 것이며, 계림의 모진 종아리는 맞을 지언정 왜국의 작록은 받지 않을 것이다 " 하며 굴복하지 않고 충절을 지킨 충열 공 박제상 선생을 기리기 위한 추모제향 이 지난 9일 강릉시 강원도 강릉시 저동 소재 경양사에서 강릉시 유림주관으로 엄숙 봉행된 가운데 이날 제관으로 초헌 관 김유묵 강릉향교 전교, 아헌관 최태 주 성균관전의, 종헌관 박은균(本孫), 집례 이연성 강릉향교 장의, 대축 김상 동 강릉향교 장의가 각각 소임을 맡았 다. 경양사는 대원군의 서원 훼철령으로 영해의 운계서원이 훼철되자 강릉박씨 종원들의 헌성으로 충열공 박제상 선생 의 영정을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하 여 일제 강점기인 1936년 건립 1977년 1 1월 28일 강원도유형문화재 제59호로 지정되었으며 사우(祠宇)에는 조선 숙 종과 정조의 어제시(御製詩)가 보존되 어 있다.건물의규모는정면 3칸,측면2 칸의단층이며,지붕은 맞배지붕으로양 쪽에 바람을 막기 위해 널빤지를 붙였 다. 솟을대문 좌우에는 방이 1칸씩 딸려 있으며, 내부에는 숙종대왕의 어제시가 걸려있다. 숙종대왕 어제시를 보면 뷺눌지왕이 즉위하자 천륜이 생각 나서 변사(辯士) 를 찾던 끝에 그 분을 얻었다네. 볼모 갔 던 동 생 을 다 오 게 하 였 으 니 신 라 의 천 년동안 제일가는 충신일세.미사흔을 빼 돌리고 부상에 홀로 남아 갖은 음형 견 디었으니 그 슬픔 오죽할까. 동녘바다 바라보고 통곡하다 죽은 아내 그 충성 그 정 절 이 역 사 에 빛 을 내 네 .뷻 으 로 충 렬 공관설당선생의충절을엿볼수있다. 한편 선생의 위패가 봉안된 양산의 충 렬사(3.27), 울산 치산서원(4.6), 공주 동학사(4.19)에서 각각 추모제향이 지 역유림주관으로봉행되었다. /박용백명예기자(강원도강릉시지부) 신라만고충신관설당박제상선생추모제향이 어져 양산충렬사,울산치산서원,강릉경양사,공주동계사등 경명왕의 아들 완산대군 시향이 지난 13일 신도비가 있는 전북 장수군 계남면 장안리에서 후손 50여명이 참례한 가운 데봉행되었다. 이날 제향은 순조 현종의 집례로 종손 성근 현종이 초헌관으로 헌작하였으며, 이어 순도, 순우 현종이 각각 아헌과 종 헌으로 헌작하고 순영 대종회장이 독축 하였다. 신라 918년 (경명왕 2년)에 완산대군 으로 봉해져 본관을 전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으나 대군의 후손으로 순 창, 무안으로 분적하고 전주박씨에서는 진사공파,목사공파생원공파로분파전 국에 후손들이 산재해 있어 규합이 어려 워 지금까지 신도비를 건립을 생각도 못 하였으나 2008년 생원공파 종회에서 건 립비용 전액과 부지를 마련하고 건립 후 매년 생원공파 주관으로 향화를 받들고 있다. 한편 다음날인 14일에는 양성재공의 묘제(墓祭)와 양성재공의 아드님을 시 작으로5대조까지제향을봉행하였다. 신도비가 있는 장안리는 전주박씨의 500여년 세거지이다. 계 남면의 입향조 는 완산대군의 21세(世) 양성재(養性 齋)공(公)이다.공(公)의 휘는 삼윤(三 胤)으로 인간의 타고난 바탕과 성질 즉 천성(天性) 길러내는 데 주력하고자 자 호(自號)한 것으로 연산조의 혼탁한 정 국을 피해 은거하여 출사하지 않고 중종 조에 생원으로 생원공파라 하여 세계를 이룬다.주변에 입행이후 후학양성을 위 한 흥학당, 근수루, 벽남정, 백인대 등 많은 유적이 산재하고 있어 입향 이후 선조의 삶과 사상은 애민과 지역의 학풍 에있음을알수있다. 전주박씨완산대군및추원재시향봉 행 완산대군시향 추원재시향 전북장수계남면장안리신도비 기미년 3·1만세운동 100주년을 기념 하고 충남지역 만세운동을 주도한 박종 병 선생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행사가 지난 7일 묘소가 있는 대전 중구 침산동 305번지에서 있었다. 충주박씨 제주공파(濟州公派, 掌議 慶錫)에서는 제주공의 18대 종손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한 선생의 묘역을 정비 하고 20대 종손 봉기(鳳基, 선생의 손 자), 선생의 2男 희증(熙增), 3男 희균 (熙均), 4男 희장(熙璋), 5男 희돈(熙 墩) 등 제손들과 대전시 중구청 박용갑 구창장,충주박씨 대종중 선복(善福)장 의, 용철(容喆). 우천(愚天), 팔석(八 錫)前장의 등 많은 종원이 참석한 가운 데 충주박씨 참의공파, 병사공파, 첨정 공파, 대전지방보훈청이 후원하고 종손 봉기(鳳基), 용갑 구청장, 선복 대종중 장의 순으로 각각 헌작과 이남일 대전지 방 보훈청장의 헌화하는 고유제를 봉행 했다. 애국지사 박종병 선생은 1889년 忠南 大德 山內 砧山 316(현 대전 중구 침산 동)에서 태어났다. 기미년 만세운동에 대전 인근의 동지들을 규합하여 3월 28 일부터 4월초까지 충남도(忠南道)대전 군(大田郡) 산내면(山內面)에서 독립 만세 운동(獨立萬歲運動)을 주동(主 動)하고 대전(大田)장터에 모인 400여 명(餘名)의 시위 군중(示威群衆)과 같 이 독립만세(獨立萬歲)를 고창(高唱) 하며 시위(示威)를 선도(先導)하다 피 체(被逮)되어 징역 2년을 받았으나 고 문으로 인한 후휴증으로 출감, 주동자 (主動者)로서 미결기간(未決期間)을 합산(合算)하여 11월 10일간 옥고(獄 苦)를치렀다. 복역 중 일경의 혹독한 고문으로 지병 을 얻어 몸과 마음이 병든 무기력한 야 인으로 향리에 은거하다 1970년 81세의 일기로파란만장한생을마쳤다. 선생의 사후 20년만인 1990년 8월 15 일 대한민국정부에서는 선생의 공적을 높이 평가하여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했다. 한편 선생의 묘역정비는 선생의 3남 희균(熙均) 등 제손들의 정성으로 애국 지사 묘소로서 부족함이 없이 훌륭히 정 비되었으며, 제주공종중의 경석 장의가 짓고 낭독한 고유문은 선생의 높은 애국 심과 잊어져 가는 3·1만세운동을 되새 겨 보고 국민들의 애국심 고취 및 후손 으로서의각오를다지고있어실어본다. ▶관련기사6면 애국지사박종병선생묘역성역화마무리 고유제봉행,대전지역만세운동주도븣건국훈장애족장을추서 단종의 신하로서 풍진세속의 불 의를 박차고 입산(入山)하여 반정 (反正)의 단성(丹誠)을 다한 구은 의사(九隱義士)의 충절을 기리기위 한 춘향 향사가 위패가 봉안된 강원 도 철원의 구은사에서 지난 10일 오 전 11시 지역 유림주관으로 김현일 (金鉉一) 집례관의 집례에 따라 허 윤(許 潤) 초헌관의 분향과 강신 전 폐례에 이어 헌작하고 김규훈(金圭 勳) 축관의 독축에 이어 박성수 영 해박씨 대종회장의 아헌관, 조규종 (曺圭鍾) 종헌관의 각각 헌작으로 봉행되었다. 이날 제향은 지역 유림과 본손 등 50여명이 참석 구은의사의 높은 충 절을기렸다. 구은사는 조선시대 단종복위를 도모한 시조 관설당의 40세(世) 도 (渡)와 아들 인손(璘孫), 계손(季 孫)과, 아우 제(濟), 형인 랑(浪)의 아들인 손(奎孫), 효손(孝孫), 천손 (千孫), 매월당 김시습(金時習), 정 재 조상치(曺尙治)를 합하여 구은 (九隱)이라 하며, 이들의 절의를 숭 상하기 위해 1818년(순조18)에 영 해박씨 후손들과 관내 사림의 발의 로건립되었다. 불사이군의 마음으로 초막동에 내려와 은거하며 단종의 복위를 도 모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지 3백50 여 년만이다. 그러나 1864년 흥선대 원군의 서원 철페령에 의해 철거되 었다가 고종3년(1894년)에 이 터에 설단(設壇)하여 구현(九賢)을 다시 배향하고, 1921년 중건되었으나 한 국전쟁의 와중에 사우가 완전 소실 되어 제향이 중지되다가 1960년 박 규손의 15대손 박재민의 발의로 초 막동에서 김화군수의 초헌으로 노 천봉행(露天奉行)되었다. 이후 1971년 가 사우(假 祠宇)를 부설하고 제례를 이어 오다 1977년 영해 박씨 후손과 사림제현(士林諸 賢)의 찬조로 신 사우(新 祠宇)를 중건하고 9월의 상정일(上丁日)에 준공 및 추계제향(秋季祭享)을 올 렸다. 구은사 제향은 매년 음력 3월과 9 월상정일에봉행된다. 영해박씨구은사춘향봉행 구은사춘향제관, 왼쪽부터김현일집례, 조규종종헌관, 허윤초헌관, 박성수아헌관, 김 규훈축관,박노정영해박씨대종회감사順 단종절신구은(九隱)추모지소븣절의정신기려 CM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