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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감 선생은, 전남 함평(咸平) 사람이다. 1940년 9월 유학을 목적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직공 또는 잡역 등에 종사하는 한편, 대판청년회(大阪靑年會) 예비교(豫備敎) 중학교에 다녔다. 이어 1941년 4월에는 대판야간중학교(大阪夜間中學校) 이부(二部) 3학년에 편입하였다. 그는 일본에 건너온 이후 일인의 재일한인에 대한 극심한 민족차별과 비참한 생활상을 목도하면서 한민족의 자유와 행복은 오직 조국독립과 민족해방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으로 판단하고 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결심하게 되었다. 1941년 12월 일제의 도발로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고 1942년 5월 9일에 우리 민족청년에 대한 징병제 실시가 발표되자, 이를 계기로 5월 중순경 동급생인 윤병윤(尹炳允)·고방웅(高房雄)·이형휘(李炯徽)·김규장(金圭藏)·하백문(河白文) 등과 비밀리에 회동, 한국독립청년당(韓國獨立靑年黨)을 결성하고 40여차례에 걸쳐 회합을 가지면서 동지규합과 정신계도에 진력하던 중, 1943년 3월 2일 일경에 피체되고 말았다. 1944년 1월 26일 대판지방재판소(大阪地方裁判所)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광복을 맞아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 출처 :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유공자 공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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