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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홀연히 만주로 떠났으니 때에 공의 나이 19세에 진주김씨와 결혼하여 신행도 하기 전이었다. 만주 간도는 한인이 많이 거주하여 구국운동이 활발한 곳이었다. 공이 그곳 신흥무관학교에서 3년의 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마치고 졸업과 함께 교관에 임명되었고 학도감을 지냈다. 1919년 북로군정서에 참여하여 사령부의 부관 즉 부사령관이었으니 사령관은 백범 김좌진이었고 왕청현에 사관동성소를 설립했으니 소장은 사령관 김좌진이고 공이 사령부 부관으로 학도단장을 겸임했으며 교관은 이장녕 이범석 김규식 김홍국 최상운이었다. 이후 독립군의 군세가 날로 강성하여 도처에서 일군영을 공략한 가운데 청산리대첩은 청사에 길이 빛이나니 청산리는 어떤 곳인가 화룡현 장백산 자락에 있어 충신장에서 백운평에 이르는 60리 내속을 말한다. 일제는 독립군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제19사단은 시베리아에서 남하하고 제21사단은 라남에서 북상했다. 대군을 맞아 싸우는데는 내곡이어야하기에 첩첩 청산 백운평에 진지를 구축하여 일거에 천여적을 섬멸했고 천수평으로 옮겨 기병대 120명을 전멸시켰으며 어랑촌에서는 주둔해 있는 적을 선제 공격하여 천여적을 사살했으나 아군의 피해도 적지 않았다. 전후 3차의 교전에 비전투원 포함 천8백명의 병력으로 10배가 넘는 3개 여단을 무찌르고도 전사 120명에 그쳤으니 이는 세계전쟁 사상 보기 드문 전적이었다. 이후 일제의 보복이 악랄하여 수령으로 넘아가 재기를 도모했으나 적군의 배신으로 만주로 내려와 항일운동단체를 규합하여 신민부를 조직하고 성동사관학교를 설립하여 사관을 양성했으니 신민부의 중앙 집행위원장은 김혁이고 총사령관은 김좌진이고 공은 보안사령관이었다. 때에 소련에 고려공산당이 있어 포용하려고 공이 극동본부가 있는 블라디보스토크를 내왕했는데 갑자기 종적이 묘연했으니 오호 이보다 더한 원통함이 있으리요. 건국 후 1986년에 건국공로 대톨령 표창이 수여되고 1977년에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부인 진주김씨는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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