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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진영읍(하계면) 기미년 독립만세의거 기념비 1차 3.31 / 김정태 / 건국훈장 애족장 1990년 12월 26일 / 1900~1950(20세) / 상업 / 부산지법 1년 6월('19.4.26), 대구복심법원확정('19.5.19) 1차 3.31 / 김용환 / 건국훈장 애족장 2018년 11월 17일 / 1899~1951(21세) / 농업 / 부산지법 1년 6월('19.4.26), 대구복심법원확정('19.5.19) 1차 3.31 / 김우현 /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1896~미상(24세) / 면서기 / 부산지법 1년 6월('19.4.26), 대구복심법원확정('19.5.19) 1차 3.31 / 김성도 /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1894~미상(26세) / 농업 / 부산지법 1년 6월('19.4.26), 대구복심법원확정('19.5.19) 2차 4.05 / 김용호 / 건국훈장 애족장 1990년 08월 15일 / 1894~1931(26세) / 상업 / 부산지법 1년 6월('19.4.26), 대구복심법원확정('19.5.22) 2차 4.05 / 안기호 / 대통령표창 추서 / 1903~미상(17세) / 학생 / 대구복심법원 1년(집유 2년), 1919년 5월 22일 2차 4.05 / 김종만 / 대통령표창 추서 / 1903~미상(17세) / 학생 / 대구복심법원 무죄, 1919년 5월 22일 1차 진영의거는 우국지사 김정태, 김용환, 김우현, 김성도 4분은 3월 30일 각자 소지금을 추렴한 후 김정태 지사에게 포목과 창호를 준비하게 하여 여래리 대숲에서 밤을 새워 '대형 태극기'와 '독립만세 전단지'를 제작해 장날인 다음 날 3월 31일 오후 1시 죽간에 태극기와 격문을 날리며 신원을 알 수 없는 의로운 기생과 '독립만세'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으나 무장한 일본 군경들로부터 읍민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무저항으로 항거 후 체포되어 모진 고문과 함께 옥고를 치르셨다. 2차 진영의거는 당시 학생의 신분으로 궐기하여 후세의 귀감이 되신 안기호, 김종만 지사는 수차례 읍민들을 선동하여 4월 5일 서당 학생 30여명과 합세하여 태극기와 대장기를 흔들며 의병처럼 봉기하여 진영 장터로 돌진하였고 혼비백산한 일본 군경이 착검 후 사격을 가하자 이를 보고 격분한 김용호 지사는 맨손과 몽둥이로 일본 군경과 맞서 육박전을 벌였고 전신 7군데를 총검에 찔리면서도 시위대를 보호하며 싸웠으나 현장에서 체포되어 모진 고문과 함께 옥고를 치르셨다. 본 표지석은 2019년 3월 1일 기미년 독립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김해시의 예산으로 건립하였다. 진영읍 기미독립만세 기념사업회 / 2019년 3월 31일 후손 대표 회장 김광호 / 부회장 김중현, 김병철, 사무국장 전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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