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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최초 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0일 구세군 교인 여성독립운동가 임명애가 교하공립보통학교(현 교하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인 학생 100여명 앞에서 조선독립 만세를 외침으로써 시작되었다. 임명애와 염규호 부부, 김수덕, 김창실 등은 염규호의 집으로 모여 함께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주민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격문을 만들어 와석면 일대에 배포하였다. 3월 26일, 임명애 등 700여명은 와석면사무소로 행진하며 대규모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에 급파된 헌병대가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기 시작했으며, 이 과정에서 최홍주가 사망하고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임명애는 체포되어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받고 만삭의 몸으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유관순 등과 함께 복역하였으며, 1990년 정부에서는 공훈을 기리기 위해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This is the historic site where the first national movement was held in Paju on March 10, 1919 against Japanese colonial ru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