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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잠하던 만세운동은 4월 9일 고덕면, 10일 서탄면에서 다시 점화되었다. 고덕면에서는 자위단원 8명과 일본군 8명이 만세운동 주동자를 검거하기 위해 현장조사를 마치고 돌아가려고 하자 밤 8시경 주민들이 거세게 항의하면서 만세를 불렀으며 이를 해산시키기 위해 일본군이 쏜 총에 주민 6~7명이 사망하고 10여 명이 부상당하는 급박한 사태가 발생했다. 4월 10일 서탄면 금암리에서는 앞서 4월 2일에 있었던 만세운동 참여자 색출 조사를 진행하던 일제 경관에게 주민들이 실력행사로 대응했다. 주민 40여 명이 경관을 포위하고 돌을 던졌으며, 이어 주민들의 주재소를 습격하려고 하자 주재소 경관은 총을 쏴 주민들을 해산시켰다. 이로 인해 주민 1명이 사망하고 12명이 부상당했다. 이밖에도 이날 북면(서탄면) 사리와 수월암리에서는 주민들이 만세를 부르고 해산하였다. 5월 10일에는 서해안 일대 수천 명의 군중이 만세를 부르고 주재소를 습격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처럼 평택지역에서는 3.1운동 초기부터 5월 10일까지 계획적이고 지속적으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평택지역 만세운동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첫째, 천도교인들과 농촌 지식인들이 주도하여 계획적이고 지속적으로 전개한 민중운동이었다. 둘째, 평택의 만세운동은 당시 지역적 한계를 넘어서 안성.화성.천안 등 인근 지역보다 앞서 전개되었다. 셋째, 일제가 '가장 광포(狂暴)한 만세운동'으로 인식했을 만큼 적극적이고 격렬한 만세운동이었다. 이밖에 평택사람들은 안성의 원곡.양성 만세운동에도 적지 않게 참여했다. 이 같은 사실로 볼 때 100년 전 평택 3.1운동은 '평택인'의 민족의식을 드러낸 가장 뜻깊고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2019년 3월 9일 평택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학술연구부장 성주현.김해규.박성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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