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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3.1만세운동 약사 평택지역은 전국적으로 볼 때 유일하게 전 지역에서 3.1운동을 전개했던 대표적인 지역이다. 3월 9일 첫 만세운동을 시작으로 5월 10일까지 약 2개월 동안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만세운동이 처음 전개된 곳은 현덕면으로 1919년 3월 9일 밤, 현재의 평택호 배수갑문에 위치한 계두봉(鷄頭峰)을 비롯해 옥녀봉, 고등산 정산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3월 10일 오성면 숙성리에서도 주민들이 산에 올라가 만세운동을 전개했으며, 같은 날 청북면에서도 현곡2리 신포 주민들이 토진리 오봉산과 마루산(무성산) 정상에서 만세를 불렀다. 이날 서탄면 금암리 주민 40여명은 경찰 주재소를 습격하였다. 3월 11일에는 이도상, 목준상, 심헌섭, 한영수, 안종철 등의 주도로 평택 읍내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도상은 3월 5일경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만세운동을 펼치기로 결심하였다. 11일 오후 5시경 평택역 앞에서 평택장날에 모인 군중을 향해 만세를 선창했고, 함께 있던 목준상, 심헌섭, 한영수, 민응환 등이 이에 동조하여 만세운동을 이끌었다. 한동안 진정됐던 만세운동은 3월 21일 복면(진위면) 야막리와 봉남리에서 또다시 전개되었다. 야막리는 천도교 진위교구가 있었던 마을로 주민 대부분이 천도교인이었다. 이들은 교구장 박창훈의 주도로 북면사무소가 있었던 봉남리 천도교도인들과 합세해 500여명의 시위대를 형성한 후 면사무소로 달려가 면장을 끌어내 앞세우고 만세를 불렀다. 3월 31일 북면(진위면) 봉남리에서는 주민 400여명이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박성백, 최구홍, 유동환, 전영록, 김봉희 등이 미리 만든 태극기를 나눠주며 시위대를 독려하였고, 면사무소와 봉남리 경찰서 주재소 앞에서 만세를 부른 뒤 각 마을로 행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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