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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 들어가는 글 참다운 선행의 원리 누가복음 14:12-14 다. 주님은 보상을 바라면서 잔치를 베푸는 것은 진정한 선행이 될 수 없음을 암시했습 니다. 갚기를 기대하는 것은 참다운 선행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갚기를 기대하는 심리는 아마 어려울 때에 도와주었기에 형편이 나아 지면 갚아달라는 ‘주고 받고’의 마음입니다. 이는 엄밀히 말해 선행보다는 투자의 성격이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보상을 바라는 것은 참다운 선행이 아니라 는 데서 한 가지를 배우게 됩니다. 선물과 뇌 물의 차이입니다. 둘의 차이가 뭐라고 생각 하십니까? 물건이나 액수의 크고 작음에 있 지 않습니다. 받고 나서 뒷말을 하는가, 하지 않는가에 있습니다. 어떤 물건을 상대방에게 주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뒷말을 하는가 하 지 않는가의 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큰 물건을 선물하고도 뒷말이 없으면 선물이 고, 작은 물건이라도 뒷말을 하면 뇌물이라 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도와주 면 진정한 선행이고, 무엇인가를 바라고 도 와주면 일종의 뇌물과 같습니다. 이는 보상 을 바라지 않는 참다운 선행이 중요한 이유 입니다. 선행은 잊어버려야 한다 14절에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 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 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고 말 씀합니다. 선행에는 진정한 복이 따르지만, 현세에서 받으면 복이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 다. 곧바로 현세에서 받는 보상은 복이 되지 않지만, 현세에서 갚음을 받지 못하는 선행 은 나중에 영원한 보상을 받게 된다는 것입 니다. 영원한 복을 기억하면서, 갚을 수 없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선행을 많이 하라는 뜻 입니다. ‘그러면 죽은 다음에 받으라는 것인 가?’ 의아심도 들 것입니다. 그런 것만은 아 닙니다. 선행을 베푸는 사람이 당대에 여러 방향으로 받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우리의 주변에서 베푸는 사람이 더 잘 된다 는 것은 알려져 있는 비밀입니다. 랍비들의 교훈 가운데는 “선행이 되기 위해 서는 받는 사람을 몰라야 한다”는 말이 있다 고 합니다. 진정한 선행은 내가 주고도 누구 에게 주었는지 모르고, 받는 쪽에서도 누가 나를 주었는지 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 와준 사람을 알게 되면 찾아가게 되고, 고맙 다고 인사하면 선행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순수하게 할 수는 없다 해도, 선한 일 을 한 것에 대해 두고두고 기억하려고만 하 지 않아도 좋을 것입니다. 나아가 내가 준 것, 내가 행한 좋은 일을 아예 잊어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멋진 선행이 될 것 입니다. 가는 인생의 길에 저와 여러분은 자신의 선 행이 자신의 자랑이 되지 말기를 바랍니다. 다만 줄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주님께만 감사 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글 | 김충렬 박사(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전 한일장신대 교수) http://www.christiantoday.co.kr/news/320936 선행은 광고하지 말아야 한다 12절에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 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 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 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 음이 될까 하노라”고 말씀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는 식사에 초대받은 사 람은 후일 초대한 그 사람에게 식사를 베푸 는 관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식사에 초대하 면서도 보상을 기대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준이 맞는 친구들이나 친척, 부자 이웃들 만 초대하면서 교제를 했습니다. 반면 형편 이 어려운 사람들은 초대를 받을 수 없었습 니다. 본문에는 잔치와 선행, 세상적으로 힘 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비교·대조가 숨 어 있습니다. 식사 잔치를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선행이 중심입니다. 시대가 많이 변해서일까요? 요즘은 누구든 지 좋은 일, 즉 선행을 하는 경우 나팔부터 부 는 시대라고 합니다. 정치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적으로 선행을 하는 사람, 심지어 교회나 종교단체들까지도 기자들을 불러놓 고, 광고하면서 선한 일을 진행합니다. 선행 을 광고하는 마음은 진심으로 돕는 선한 행 위가 아니라, 자기를 선전하기 위한 마음이 중심일 것입니다. 이는 그 선행을 사람들이 기억해 주고, 칭찬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해 여리고로 내려가다 불한당을 만난 사람을 도와줬던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이름 이 나와있지 않습니다. 그렇게 많은 노력을 기울여 강도 만난 사람을 살려준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아직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는 선행이란 사람들에게 떠벌리면서 광고하지 말아야 하고, 생색을 내는 선행은 진정한 선 행이 아니라는 교훈입니다. 선행은 갚기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13절에서는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 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 인들을 청하라”고 말합니다. 여기 나오는 사 람들은 모두 사회적 약자들입니다. 그들은 생활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에 초대한 사람에 게 쉽게 보상하기 어려운 형편에 있었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