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page

2019년1월31일 목요일 5 (제145호) 관향조 종친회 함양박씨 중시조 諱 善의 29세孫으로 충남 아산시 염 치면 중방리에서 1930년(庚午) 태어났다. 상계를 보면 한성판윤(漢城判尹)을 지내고 영조9년 70壽로 기로소 (耆老所)에 드신 諱 내정(乃貞)의 10대 孫이다. 총재의 선조들은 면면히 국가가 어려울 때 앞장서서 구국(救 國)을 위한 혼신의 노력을 다하였으며 청백리(淸白吏) 로 칭송을 받았다. 또한 가정에서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가 우애가 좋아 효우세가(孝友世家)의 가풍(家風) 을 지키며 현세 까지 이르게 된다.특히 14대祖소요당공 (逍遙堂 諱 世茂)이 친히 저술한 동몽선습(童蒙先習)을 기회가 있을때 마다 여러번 탐독하고 가르침을 몸소 실 천하는행동을보여주었다. 동몽선습의 첫구절인 뷺天地之間 萬物之衆에 惟人이 最貴하니 所貴乎人者는 以其有五倫也뷻니라 “천지 사이 에 있는 만물의 무리 가운데에서 오직 사람이 가장 존귀 하다.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오륜(五倫)이 있 기 때문이다”는 90평생을 살면서 정신적 지주역할을 하 였다고전한다. 아산군 염치면 중방리에서 유학자인 할아버지 밑에서 4살 때 천자문을 뗐고, 7살에 아버지가 분가하면서 아산 군 도고면 시전리의 농촌마을에서 농사일을 도우며 16 살에 해방을 맞았다. 일본 교사들이 떠나면서 천안농업 학교 중학교과정 3학년을 끝으로 고향 도고 초등학교의 교사로 천진난만한 어린이와 더불어 사는 그 교사생활 을천직으로생각했다. 3년의 교사생활로 정교사가 되었으나 징집통지서가 나왔다. 그러나 기왕이면 장교로 복무를 원했고 우여곡 절 끝에 1950년 6월1일 육군사관학교 정규 2기로 입학 2 5일 만에 6·25를 맞아 계급도 군번도 없이 생도로 전쟁 터를 누볐다.아버지께서 공주고등보통학교에서 조국광 복을 위해 비밀결사대를 조직하여 조국을 되찾기 위해 뛰었듯 박 총재 또한 조국수호만을 위해 젊은 혈기를 불 태웠다. 기초교육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M-1 소총사격이 라야 8발 밖에 쏘아보지 못한 상황에 함께 입교한 333명 의 생 도 들 은 청 운 의 뜻 을 품 은 지 한 달 만 에 8 6 명 의 전 우들이불귀의길을갔다. 전쟁을 수행하기 위하여 군은 장교가 필요하였고 단 기에 다수의 장교를 양성하기 위하여 부산 동래고등하 교자리에 육군종합학교를 창설,박 총재는 1950년 8월 2 6일 제2기로 편입되어 10월 21일 졸업과 함께 소위로 임 관하여최전방부대에서수많은전투를경험했다. 중대장으로서 많은 중대원을 잃었고, 중공군의 인해 전술, 백마고지 전투 등, 그리고 최 일선 참호에서 미국 군사유학의 길을 떠나 한국군의 정예화를 위해 미육군 보병학교에 입교 1952년 9월 우수한 성적으로 과정을 이 수하고 고국에 돌아와 광주 보병학교에서 교관으로 우 리 군의 정예화에 앞장서며 3년여 전쟁의 생생한 증언자 가 되 었 다 . 이후 박총재는 1956년 UN군 사령부내 미 군사고문단 장 전속부관, 1961년 주미 한국대사관 육군무관보좌관 으로 임명을 받고 워싱턴에 부임 3년반 근무 후 육군 대 령으로예편했다. 1957년 통일교에 입교하여 문선명 총재와 인연을 맺 었다. 1965년 세계선교사로 도미 한미문화재단 창설 ‘자 유아시아방송’, ‘리틀엔젤스’ 공연으로 미국에 반향(反 響)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2010년 6월부터 2011년 11 월까지 전쟁에 참여했던 UN 22개국을 순방하여 공연을 통한보은행사를펼쳐‘은혜를잊지않는대한민국’을세 계에알렸다. 리틀엔젤스예술단은 과거 반세기 동안의 전통과 축적 된 지식을 기반으로 대한민국의 문화브랜드로서 그 역 할을 다하고 있어 국내는 물론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으며,리틀엔젤스예술단원의 뒤에는 박보희 한국문화 재단총재가있었다. 1978년 코리아게이트 사건의 여파로 미 하원 푸레이 저 위원회에 소환되어 수세적 위치에도 불구하고 거침 없는 영어로 “한국인은 매사에 혐의를 받고, 조롱 받고 있다. 하지만 나는 조금도 후퇴함이 없다. 누가 뭐라고 해도 자랑스런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프레이저 위원장, 귀하가 공산당이 아닌데 왜 한국을 파괴하려 하나”라고 말하며 프레이저 위원장을 도리어 ‘공산주의자’‘마귀의 앞잡이’로 몰아붙였다. 당시 그는 거침없는 영어 실력으 로 청문회 스타로 떠오르며 ‘자랑스런 한국인’이란 별명 을얻기도했다. 코리아게이트 사건은 박정희 정부의 대미 로비사건인 ‘박동선게이트’를조사하기위해열린것으로당시한국 정부는 “로비스트 박동선에게 로비자금을 제공하고 미 국 정치인들을 매수해 주한미군 철수를 막으려 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었다. 당시 박정희 정권에서 중앙정보부 장을 지냈던 김형욱씨마저 청문회에 나와 한국 정부에 불리한 증언을 했다. 그러나 박 총재의 증언으로 상황은 일거에반전되었다. 반공주의자 레이건이 압 승한 탄생비화 속에는 다 음과 같은 일이 있다. ‘박보 희 내 일 당 장 3 차 세 계 대 전 이 일어난다는 각오로 뉴 스월드(워싱턴타임즈 전 신) 헤드라인에 븮레이건 압 승븯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실어 보내게나“ 엄청난 모 험을 걸었고, 누구도 예상 치못한기적이일어났다. 1980년 레이건 정부가 출 범하게 된 것이다. 출범과 함께 박보희 총재는 레이 건 행정부의 정책파트너십 으로 1982년 워싱턴타임즈 창간책임자로 나서 치열한 대소압박을 가한 끝에, 드디어 1991년 소 연방 해체의 냉 전종식을이끌게된다.당시표면적인냉전종식역사의주 역인 레이건 부시 대처 고르바쵸프 엘친 등 이면에, 문선 명총재그리고이를적극뒷받침한박보희총재가있었음 을어느누구도결코부인하기힘든사실로알고있다. 총재는 1991년 11월 제3대 세계일보 사장에 취임해 그 해 12월 평양에서 열린 문선명(文鮮明) 총재와 김일성 (金日成)북한주석의단독회담때문총재를수행했다. 평양 한복판에서 그것도 북한 수뇌부와 함께 한 자리 에서 책상을 치며 “주체사상으로는 안 된다. 북한의 남 침을 세계 앞에 사과하라” 불호령이 터졌다. 문선명 총 재의 돌출행동에 당시 옆 자리에 동행한 박보희 총재는 “이미끝났다”는심정뿐이었다. 하지만 이 역설적 행동 하나가 북한의 비핵화 서명을 받아내고, 이후 평양에 리틀엔젤스 공연이 이루어지고, 세계평화센터를 건립하였으며, 평화자동차를 운영하는 등 누구도 범접하지 못한 남북화해의 역사를 이끌어 내 게된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시에 남한에서는 박보희 회 장이 유일하게 조문을 다녀오기도 했는데, 모두가 조문 (弔問)을 주저하던 때에 그는 오직 남북화해를 진전시 켜야 한다는 구국과 국익의 일념뿐으로 “압록강을 헤엄 쳐서라도조문을다녀와야한다”하고실행에옮겼다. 박보희 총재는 진정 남북화해의 큰 일꾼이었으며, 화 해의한국인이었다. 박 총 재 는 첫 째 도 가 정 둘 째 도 가 정 으 로 그 이 면 에 는 타 고 난 숭조심이 있다. 함양박씨 후 손으로 수시로 대종회에 들러 관계자들을 격려하면서 대종회 발전에힘을보태주었다. 2011년 시조대왕 추향에는 초 헌관으로 헌작하였으며,속함대 군 향사와 경기도 고양시의 구 소명 종중의 향사에도 참석한 다. 그리고 수시로 종원들을 초 청 리틀엔젤스 공연 관람으로 위로한다. 특히 시조대왕 찬가를 작사하는 등 종중에도 큰 족적 을남겨갑작스런영면은큰충격을주었다. 한편, 박 총재는 한국문화재단 총재, 주미 한국대사관 무관 보좌관과 선화학원 이사장, 미국 뉴욕시티트리뷴 발행인, 워싱턴타임스 설립·회장·명예회장, 세계일보 사장, 세계평화연합 의장, 한미문화자유재단 총재, 중남 미평화기구 명예총재, 카우사 인터내셔널 회장, 세계평 화정상회의 명예회장, 전 세계언론인협회 회장 등을 역 임하였으며 84년 아르헨티나 라프라타 카톨릭대학으로 부터명예철학박사학위를수여받았다. 뱚박보희총재는누구인가? 뱚6븡25전쟁터를누빈철저한반공주의자 6.25당시의박보희 총재(맨우측) 리틀엔젤스 창립50주년 행사에 함양박씨대종회 임원진을 초청하 여함께한박총재. 뱚UN참전국순회공연븣보은행사펼친평화대사 뱚나는자랑스런한국인 1978년 미하원 청문회장에서 프리이저 위원장(왼쪽)에 맞서 거세 게반박하는박총재 뱚냉전종식의숨은주역 남북화해의밀알이되다 1994년 1월 27일 김일성 위원장 과 함 께 한 박 총재. 뱚타고난숭조심 2012년 시조대왕 추향대 제에 초헌관으로 헌작하 는 박 총재 밀성박씨고양선조원당종중회는 지난 1월 18일 본회 소회 의실에서 2018년 후반기 사업결산 심의 및 2019년도 새해 예 산안 심의를 위한 제1차 이사 및 감사 연석회의를 개최하여 박경준 감사로부터 사업결산에 대한 감사보고를 받고, 이에 대한 심의후 원안대로 처리하고 집행부로부터 새해 예산안 에 대한 사업계획 설명을 듣고 장시간 토론을 갖고 경제 불안 정으로 인해 임대사업도 어려움을 격고 있는데 예산을 줄여 서라도 어려움을 넘겨야 한다는 절박한 인식하에 지난 1월 1 4일 원로회의에서 뼈를 깎는 심정으로 65세 이상 지급되는 경로복지금을 줄이는 방법과 지급연령을 70세로 상향조정하 는 안을 의결한 사항을 갖고 집중 토론한 끝에 전회원이 동참 할 수 있도록 묘역관리비 폐지와 원로회의 결과를 수용하여 시행하는 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고 나머지 예산안은 승 인을 하되 집행부에서 완급을 조정해 가며 집행해 줄 것을 당 부하고 후반기 사업결산과 새해예산안 모두 를 통과시키고, 이어 자리를 옮겨 저녁식사와 함께 종중발전을 위한 토론을 하고해산하였다. /박봉준명예기자(경기고양시지부) 밀성박씨충헌공파경기도고양시원당종중 회 2018년도후반기사업결산및2019년도새해예산안심의이사회개최 밀양박씨 경산문중의 문호를 연 요산공 종중(회장 재균)의 이사회 및 정기총회가 지난 20일(일) 오전11 시 진량읍 소재 ‘소삼장’에서 종원 60여명이 참석한 가 운데 시조왕 향배와 상읍례를 시작으로 회장인사,감사 ·회계·종무보고,안건상정순으로진행되었다. 박재균 회장은 이날 인사말을 통해 부족한 사람에게 무한한 성원으로 임기2년을 무사히 마칠 수 있어 감사 드린다고 말하고 숭조와 애종, 봉사를 목적으로 하는 종중의사업에적극동참하여줄것을당부했다. 감사·회계·종무보고를 원안대로 마친 후 상정된 안 건은 △회칙개정의 건 △임원선출의 건 △기타토의 건 을 각각 상정하여 △회칙개정은 제9조(임원)부회장 1 명을 3명으로 개정하여 요산공(휘 운달)의 아들 송재 공 (휘 근 손 )이 아 들 3 명 (蕃 , 蘭 , 苞 )을 둠 으 로 서 각 종 중의1명씩을당연직부회장으로두게되었다. △임원 개선에는 현 재균 회장을 유임하고 병대 주손 을 자문위원, 용정, 천열, 윤근 원로 종원을 고문, 부회 장 순봉(정재공 后), 정수(백헌공 后), 광준(송고공 后), 이사 병식, 재정, 채정(이상 정재공 后), 정룡, 성 수, 찬수(이상 백헌공 后), 병우, 창균, 남균(이상 송고 공 后),감사 병식(정재공 后),병목(송고공 后)현종을 각각선출하였다. △기타토의 안건으로는 원 모 정, 종택, 추모당 관리 일원화 건, 종회소유 부동산의 소유자 명칭 및 대표자 정리의 건을 원안대로 처리하고,참판공 세보 편찬의 건 은 시기적으로 이른 감이 있고, 요산공 세일사일 변경의 건은 택 일하여 공휴일 봉행은 아직 정서 상 맞 지 않 아 당 초 음 력 1 0 월 1 0 일봉행키로하는등부결되었다. 요산공 문중은 시조왕의 53세손으로 성종 22년(149 1)휘 빈(彬)의 아들 휘(諱)운달(雲達)공(公)을 파조 로모시고있으며요산(樂山)호(號)이다. 허 백 당 홍 귀 달 의 문 하 에 나 아 가 수 학 하 여 2 6 세 되 던 중종 11년(1516) 무과에 급제하고 31세에 선전관이 되 었으며,서포서 별검을 거쳐 중종 25년(1530년)40세에 봉상시주부를지냈다. 50세 무렵 청주에서 경산 진량으로 거처를 옮긴 후 은둔하며 발분 면학하였으며,이웃 고을인 청도의삼족 당 김대유, 소요당 박하담과 교유하며 시작과 도학의 담론을 나누고 명종 13년(1558년)68세로 별세하였다. 요산공의 아들 송재공(휘 근손)에 이르러 아들 번 (蕃,정재공),란(蘭,백헌공),포(苞,송재공)을 둠으로 서크게번성하였다. /박방무명예기자(경북 경산시지부) 규정공후(后)참판공파요산공종중定總성 료 재균회장유임등임원개선 박재균회장 규정공 후(后)참판공의 7世 휘 번(蕃,호 정재)의 후 손 모임인 정재공파 임원회의가 지난 17일 종중회관 회 의실에서열렸다. 이날 회의는 이달 30일 개최되는 정기총회에 상정 할 안건으로 △회장 승인의 건 △2018년도 사업실적 및 결 산보고△2019년사업계획및세입·세출예산안이다. △ 회장 승인의 건은 지난해 유명을 달리한 승호 회 장의 후임으로 현 직무대행을 대표자 회장으로 △2019 년 사업으로 빌딩 유지관리,규정공,참판공,요산공 시 향 참례와 정재공 묘사 주관, 종답 유지관리이고, 이에 따른예산1억2천6백여만원이다. 한편 이날 병균 직무대행은 인사말을 통해 내실 있는 운영을강조하고종원들의협조를당부했다. 정재공은 성균 생원을 지낸 휘 근손(謹遜)의 차남으 로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봉사, 사복시 주부, 청엄도 찰방,통훈대부 행 태천현감,훈련원 첨정,절충장군 칠 포만호를 지냈고, 아들 죽고공 휘 응득이 정유재란에 크게 공훈을 세우고 귀(貴)하게 됨으로서 가선대부 병 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 부총관에 추증되 었으며 후손들은 진량읍 다문리와 대원리에 산거하며 참판공후예중제일번성하였다. 종중은 경산 진량의 ‘경산 4일반산업단지’ 편입 용 지 보상에 따라 마련된 자금 중 15억 5천만원으로 대지 11 7평, 건평 258평의 지하1층 지상5층 빌딩을 매입하여 종원들의복지와선조숭조사업에전념하고있다. /박방무명예기자(경북 경산시지부) 밀양박씨정재공파임원회가져 총회부의 안건 심의 정재공파 종중 임원회의가 지난 17일 개최된 가운데 병균 회장이 회의를주재하고있다. 남파공 종중 정기총회가 지난 달 21일 오전11시 진량 읍 진량갈비에서 개최된 가운데 병균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내실을 기하고 숭조사업에 더욱 매진하자고 말했 다. 밀양박씨 남파공 종중(대표 병균) 정기총회가 지난 달 21일 오전 11시 ‘진량갈비’에서 종원 30여명이 참석, 임원 개선 및 2018년도 감사보고,결산 및 종부 보고 등 의 안건을 상정 처리한 가운데 임원개선에 있어 대표 병균, 총무 병식, 재무 세정, 감사 방무, 병천을 각각 선 출하고용정원로종친을고문으로추대하였다. 2018년 세입 결산에는 15억5천8백여만원이고, 세출 은1천9백여만원이다. 남파공 문중은 경산 입향조 요산공의 7세 휘 인창(仁 昌)으로, 정유재란(丁酉再亂)에 분연히 일어나 난을 진압하는데 功을 세우고, 병자호란(丙子胡亂)에 임 금 을 호종(扈從)하여 척화론을 펼치며 항거했으나 주화 론에 굴욕적인 항복을 함에 벼슬을 버리고 귀향하여 후 진양성에매진한죽고공(휘응등)의증손이다. /박방무명예기자(경북 경산시지부) 밀양박씨남파공종중정기총회성료 임원개선및결산등논의 CM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