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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자가 초헌관을 인도하여 망예위로 나간다. 초헌관이 북쪽을 향해 서 면 찬자는 서쪽을 향해 선다. 대축이 축문과 폐백을 구덩이에 넣고 불사 른 후에 흙을 조금 덮은 다음 내려가 제자리로 돌아간다. 알자가 초헌관 의 왼편으로 가서 예를 마쳤음을 고한다. 독을 덮은 뒤에 문을 닫고 제기 인 보와 궤도 덮는다. 이를 마치면 알자가 초헌관 이하를 인도하여 나간 다. 대축과 제집사는 계간 배위로 나가 4배를 드리고 나간다. 뒤를 이어 집례, 찬자, 알자가 배위에 나가 4배를 하고 나간다. 이로써 석전례의 모 든 절차를 끝마친다. 그러나 조선 시대에 석전제는 제향 그 자체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석전 에는 지방관이 초헌관으로 참여하였고, 석전이 끝나면 지방 유럼들이 향 촌 사회의 여론을 수렴하여 지방관에게 전달하였기 때문에 향촌 자치 기 구의 역할을 하였다. 또 석전에 참여한 유림은 특별 대우를 받았으므로 석전 거행의 임원이 되는 것은 그 지방에서 양반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석전제가 끝난 뒤 교임을 선출했기 때문에 지방 유림들은 석전에 대한 관심을 소홀히 할 수가 없었다. 향교와 서원 모두에서 거행되었던 석전은 조선 후기 지방 유림들의 가장 큰 집회 행 사였다 할 수 있다. 오늘날에도 석전이 거행될 때 초헌관은 시장이나 군 수가 맡고 있으며 종헌관은 향교의 전교가 담당하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다.9 9 김호일, 『한국의 향교.~ , 대원사, 2000, 96P. 384 I 예악의 고장 합선의 제례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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