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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은 고려 태상경좌윤을 지낸 인물로 황산대첩 (1380년 고려 우왕6년 전 라도 지리산 황산지역 전투)에서 큰 공훈을 세워 진천군(품川君)에 봉해 진 바 있다. 문헌에 따르면 파조 강위상 선생과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 계가 인척간이고 같은 고려조 무신이며 한때는 전우였다고 전해진다. 그 런 인연으로 이성계가 왕이 된 후 진천군에게 벼슬을 강권하였으나 “나는 고려의 구국 공신의 후예다. 역성한 조정에는 나갈 수 없다.”하고 곧바로 두문동을 시작으로 고난의 길을 걷게 되었다. 말년에 진천군의 유언이 죽 은 뒤에 너희가 박해를 면하려면 내 이름 중상(件神)을 위상(1뿜祚)으로, 군호 진원(普原)을 진천(普川)으로 고치라는 말씀을 남겨 후손이 이 를 따라 휘 함과 군호를 두 가지 로 사용하게 되 었다고 한다. 믿 사당 -삼현사 경남 합천군 율곡면 임북리에 있는 삼현사(三賢洞)에서는 화재(和蘭) 강인수(姜仁壽: 1511 - 1558) 선생과 아들인 당암(靈魔) 강익문(姜靈 文:1568-1648) 선생 화재의 손자인 한사(寒沙) 강대수(姜大途:1691- 1658) 선생까지 3대의 선조를 모시고 있다. 화재공은 학행과 효렴으로 은전(恩典)을 입어 증손(曾孫) 대수의 귀한 것으로 해서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의 중직을 받았으며 문장과 덕업은 지금까지도 후대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도연서원에 향사를 치루고 있으 며 공의 묘는 지현 최상봉 합곡 간좌이다. 18세손 당암공 익문은 조선시대 문신으로 1589년 선조22년 사마시에 합격 창의 (1昌義)하여 왜적과 싸웠고 1606 선조39년 증광 문과 을과에 급 제 이듬해 성균관 학유 임명 시강원 설서를 겸직했다. 1609년 광해원년 에 예조좌랑을 지냈으며 1614년 계축옥사가 일어나 병을 핑계로 사직하 1부 쩌|으|례 I 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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