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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11월30일 금요일 7 (제143호) 관향조 종친회·기획 고려조에 내부시승(內附侍丞)에 이르고 순충동덕찬화공신 삼중대광 (純忠同德贊化功臣 三重大匡)에 밀 성군(密城君)으로 봉(封)해졌으며, 추은(推恩)으로 금자광록대부(金 紫光祿大夫)의 은총이 더하여지고 시호(諡號)를 충헌(忠憲)으로 하사 받은 충헌공 휘 척(陟)을 비롯하여, 문과에 올라 조현대부(朝顯大夫)로 흥위위(興威衛) 정용장군(精勇將 軍)에 협찬공신(協贊功臣)으로 황 증문하평리(皇贈門下評理 종2품) 에이르렀다. 특히 고려 충렬왕 6년 군사 25,000 명을 거느리고 왜적을 정벌 한 아드 님 성진(成進), 충숙왕조(忠肅王 朝)에 벼슬이 판전교시사(判典校寺 事)에 이르고 규의선력공신(揆儀宣 力功臣)으로 밀성군에 봉해진 손자 휘는 원(原) 등 삼부자 추향이 지난 10일 경남 밀양시 하남읍 귀명동의 경모재에 마련된 단소에서 승근 대 종회 감사의 집례로 각 헌관의 헌작 으로엄숙봉행되었다. 단소 봉행 후에는 판전교시사의 아들 대제학공 휘 윤문과 손자 정언 공 휘 삼양(三陽), 참찬공 휘 계양 (啓陽)의향사가이어졌다. 제향 하루전에는 충헌공파 대종 회(회장 명준) 정기총회 및 개좌를 열어 제관분정과 세입세출결산 등 지난한해 살림을 점검하고더 발전 하는 종회를 만들기 위한 토론이 이 어진 가운데 명준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조상과 나를 연결해주는 고리 는 제사이며 더 나아가 효행으로 이 어진다며 참례해준 종원 모두 에게 감사드린다며 더 적극적인 참여를 주문했다. 한편 이날 봉행된 단소 제관은 다 음과 같다.(충헌공/정용장군/판전 교시사順) △초헌관 판철/수덕/재곤 △아헌 관 상오/용업/장수 △종헌관 두현/ 광면/호열 △축관 용수/수성/호권. -이상- 밀성박씨충헌공파경모재추향봉행 5대(代)6위(位)븣전일입재하여개좌및 결산총회열어 △1996년7월6일土曜日日氣雲晴 간밤에 황 서방(黃書房)집에서 비좁은 이층이라고 시원하게 피곤증을 풀었다. 아침 여덟시 국제공항 제2 청사븣.10시 35분 출발(出發) 대한 항공 북경행(北京 行)12시 25분에 난생처음 북경(北京)공항도착,넓으나 넓은 대광야(大廣野)를 착륙 직전에 내려다보고 아∼ 아 감탄사... 그나마 개발되지 않은 허스름한 국제공항 (國際空港)을 나오자 각종(各種) 차량은 세계 자동차 (世界自動車)전시장을방불케한다. 서울 경기지역 면적(面積)에 인구(人口)는 1,200백 만명 지적 소유권(地積 所有權)이 없는 터라 시내교통 은일방로(一方路)로쭉쭉뻗어났다. 북경시내(北京市內)일호선전철이65㎞초등학교(初 等學校)6년(六年)중학교(中學校)3년(三年)은의무교 육(義務敎育)대학입시는어려운시험(試驗)이란다. 월급(月給)은 평균60,000∼80,000원.백미(白米)1kg 당 3원,80㎏2,400원(韓貨)이란다. 철도공무원이요 부천중국농장 책임자(富泉中國農場 責任者) 박관연의 동서인 진철경의 조부(祖父)가 강원 도강릉출신교포3세인데안내를해주었다. 북경공항에서 비행기를 국내선(國內線)으로 바꾸어 타고 두 시간, 이 민족(民族)의 자치족(自治族)인 연길 시(延吉市)에 도착, 황야의 넓은 대평원(大平原)을 내 눈으로 보았다. 끝없는 평원의 속삭임은 식물(植物)의 자생(自生)뿐이다. 백산대하(白山大廈)호텔에 여장을풀었다. △1996년7월7일 日曜日日氣雲雨 공 기 는 그 렇 게 도 맑 다 . 오염되지 않은 하늘이 내려다준 장백산(張白山)의 물 맑고 깨끗하고 산(山)도 그렇게 없고 고원(高原)까 지 펼쳐지는 그 넓은 황야에 배고픔이 어디 있으랴븣. 1 962년에 시로 승격된 자치족(自治族) 교포들만이 50% 이상 30만 명이 살고 중국(中國)전체에서 한족성(漢族 性)을 빼고는 소수민족(少數民族)으로서는 단연 우수 성을 인정받아 대장족의 발전(發展)을 하고 있는 우리 의제2의땅이라고나할까. 이 민족(民族)의 선조(先朝)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일본(日本)의 강압으로 쫓겨 허름한 보따리 짊어지고 망망 대지로 쫓겨 산짐승 우굴 대고 잡초로 우거진 이 땅을 괭이와 삽질하였던 선조(先祖)들의 피땀 어림이 바로오늘날의부(富)를낳게해주었다. 이곳 길림성(吉林城) 연길시(延吉市) 용정시(龍井 市) 도문시(圖문市)는 각각 강물을 끼고 발전(發展)하 여 부농(富農)으로 터를 닦아 오늘날의 이 거리는 완전 히 한국(韓國)의 거리이다 간판들도 한국어가 우선 앞 줄이고 뒷줄이 한문(漢文)이다 두 사람이 지나가면 그 중 한사람은 한국인(韓國人)이다. 중국(中國)에 제일 발전된 항주(抗州)는 시표시(市票示)가 동물상(動物 像)의 양(羊)인데 제2 발전된 이곳 연길(延吉)은 장백 산(張白山)의 동부(東部) 백두산(白頭山)호랑이 동상 이 연길시(延吉市)한 복판에 12m높이에 한입 털컹 물 어 댈 듯 그 포요함과 용맹스러운 한편 듬직하고도 든든 한 그 모습 이 돌은 태령산(太靈山) 아미현으로서 108 개로 조각이니 이무슨 불교(佛敎)의 의미를 담겨진것 일까. 중국 길림성(中國 吉林城) 200만 인구(人口) 중 85만 명(萬名)이 조선족(朝鮮族)이라는 것 6시30분 호텔에 서 출발(出發) 250㎞. 56시간을 버스를 타야만 하는 백 두산천지(白頭山天地)길을떠났다. 12시 30분 까지 백두산(白頭山) 장백산((張白山)을 올라가는 산로(山路) 주변에는 미인송(美人松)과 본 (本) 나무가 빽빽이 나무하나도 건드리지를 말라. 바람 에 쓰러지면 그대로 썩어가도록 두어라 이곳 산림법(山 林法)이그렇게엄하기도하다. 갈림길 초소에는 4개월간 관광객이 몰린다.95%가 남 한인(南韓人) 길림성(吉林城) 85만 우리민족에게 부 (富)는 우리가 만들어 준 것이나 진배없다 또 이곳 인구 의관리들작태돈주면빨리입장시켜준다. 몇 시간을 기다리다가 관광차로 갈아타고 우리 민족 의 영산(靈山) 백두산천지(白頭山 天池) 수심 374 204 m둘레 13.12㎞ 20억㎡ 16개 봉우리 기암절벽으로 아깝 게도 이곳 16개 봉우리도 분단(分斷)이 되어 6븡25로 중 국의 전쟁 대가(代價)로 6개는 중국이요 7개는 북한 (北韓)3개는 경계봉이다.북한에 위치한 장군봉이 27,4 92m요 중국에 위치 대군봉은 2691m.수면은 해발 2,149 m이니 우리는 지금 450m밑 천지수면(天池水面)을 관 람한것이다. 비가 내리고 안개가 자욱하고 다행이도 우리가 올라 갔을 때에는 완전 안개가 걷히어서 오수면과 봉우리를 볼 수 있었고,20,000원을 준 특별 사진기의 샷다는 자그 닥 잘그닥 잘도 활동사진 처럼 돌아간다. 1,500년 정혜 공 선조께서 함경도(咸鏡道) 감사 평양감사를 이곳에 서 근무하신 터라 후손이 왔기에 완전 개방을 해주노나, 감사(感謝)합니다. 깎아지른 절벽 낭떠러지 400m수면을 가기란 이곳에 서는도저히불가능,그래서장백폭포로차를몰았다. 장백폭포 밑에 위치한 60-70도 최고 82도 온수 달걀 이 삶아 진 곳 나는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남이야 나하 고는 이탈이 될망정 비는 부슬비 우비를 입고 등산했다. 장백폭포 68m낙차를 보면서 오르고 또 오르고 이물의 근원지(根源地) 천지연을 맛보리라 하고 장백폭포 상 단 에 오르니 물은 수평을 이르듯 도도히 흘러내린다. 3 .5㎞. 내리던 백설(白雪)은 골짜기 빙벽을 이루어 소복 히 쌓였고 음지(陰地)에도 학호는 뛰다 싶이 하여 드디 어 왔노라 정말 했노라. 다행이도 사진사가 있어 한 장 이 천원에 찍었다.정혜공 선조님이시여 감사합니다.이 토록이나돌보아주셨나이까? 뱚뱚기네스북의학호(鶴湖)일기 백두산천지 ‘학호일기’는 어렸을 적부터 하루하루를 꼼꼼 히기록해놓은학호박래욱선생의일기이다.1 948년 10살 때사자소학을배우면서 어머니의 권유로 시작된 일기쓰기는 82세가 된 지금도 그 기록은 이어진다.6·25전쟁으로 일부를 잃 어버렸지만1950년부터지금까지의일기는기 네스북에 등재되었다. 이번호는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우리 국민이 중국을 통해 백두산 관 광을 할 수 있었으나,지난 9월 20일 남북정상 이 백두산 장군봉에 오르면서 백두산이 주목 받고 있어 1996년 7월 6일부터 8일까지 백두 산을 다녀오면서 남긴 일기를 통해 당시 물가 등을비교해보는것또한흥미로울것같다. 밀성박씨 행산공파 대종회(회장 중 희)는 지난 8일 사이버족보 시연회를 갖 고 이날부터 수단을 접수하여 최대한 빠 른 시일내에 사이버족보를 구축하여 개 통키로하였다. 사이버 족보는 거제시에 거주하는 진 수 현종이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1997년 정축보를 기준으로 입력이 완료되었고, 이후 변동사항에 대해 신규 출생자 또는 정축보에 미 등재된 종원에 대해 결혼을 한 어른은 12,000원 아이는 6,000원의 수 단비를 납부해야 하고 접수기한은 2019 년1월말까지이다. 한편 행산재는 다음날인 9일 오전8시 가전학사로 높이 추앙받은 행산공(杏山 公), 도은공(挑隱公) 소감공(少監公) 삼부자의 절의정신과 충효사상을 기리 는 추향제례를 정웅(政雄) 집례관의 창 홀에따라엄숙봉행됐다. ▶제관은 다음과 같다.(행산공/도은 공/소감공順) △초헌관 병수/번(繁)/홍식. △아헌 관 부일/연희/진흠 △종헌관 준석/병호 /원흠△축관무흠/을수/병승. 행산공(杏山公)은 양효공(良孝公) 간(幹)의 차차(次子)로서 휘(諱)는 세 균(世均)으로 고려조의 보문각 태학사 이며 전문형(典文衡, 정2품)과 중국 元 나라에서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내 고 귀국하여 벼슬이 평장사(平章事)에 오르고, 밀성부원군(密 城府院君)에 봉 해진 후 사후에 시호(諡號)를 충정(忠 靖)이라받았다. 아들 도은공(挑隱公,휘 文彬)과 소감 공(少監公, 휘 文翊) 형제가 포은(정몽 주), 목은(이색)등의 문인들과 교류하 였다. 행산재추향봉행·사이버족보시연회가 져 1997년정축보기준수단접수 밀성박씨 행산공파 전주문중의 중 인동 세거지는 600여년 전 입향 한 이조참판공 휘 신총의 손자 좌승지 휘 결(潔)로부터 세계가 이어져 전 주 ‘중인동박씨’라는 말이 있을 정도 로토호성씨로성장했다. 행산공파 세보(世譜)에 의하면 휘 신총(臣寵)은 문과 이조참판, 그의 아들 휘 응인(應仁)은 생원(生員)으 로 모두 묘소의 위치는 표시되지 않 고 다 만 손 자 휘 결 (潔 ) , 증 손 휘 원 생(元생)의 묘소가 전북 임실 마항 동에 있었으나 몇 번의 난(亂)을 거 치면서 실전하여 숭조단을 세워 향 화를 받들고 있는 가운데 지난 10일 오전11시 우천으로 인해 재실 첨모 재(瞻慕齋)에서 정성스럽게 제수를 진설하고 엄숙하게 2018 향사를 봉 행하였다. 전주문중의 입향조 휘 결은 무과 에 올라 전농시 소윤과 용강군수,승 정원좌승지를 역임하였고, 아들 휘 원생은 용강군수, 승정원 동부승지 를 역임하였고, 휘 원생(元生)의 손 자 휘(迪孫)은 판결사(判決事)를 거처 일본통신부사(日本通信副使) 를 지내는 등 대대로 관직이 이어졌 다. 판결사공(휘 유손)의 아들 인충 (仁衷)은 가각고부승과 승정원 부승 지를 역임 묘소가 중인동 150번지에 묘소가 전해져 그곳을 전주 문중의 도선산으로부른다. 밀성박씨행산공파첨모재추향봉행 첨모재(瞻慕齋) 행산공파전주문중주요유적. 제향광경. 음성박씨 문익공파 종친회(회장 평헌)는 지난 9일 우천으로 노하리 마을회관에서 파조 문익공 이하 선 조의제향을봉행했다. 문익공파는 음성백(陰城伯) 박서 (朴犀)장군의 증손 문길(文吉)의 차남 정(淨)으로부터 시작된다. 충 민공박순선생이백형(伯兄)이다. 문익공파의 파조 박정(朴淨)은 세종 을묘(1435년)에 좌찬성과 조 봉대부에 증직되고, 시호(諡號)는 문익(文翼)으로 전답 수백 묘(畝, 이랑)를 하사받아 그 자손에게 전하 게 하고 불천위로 제사를 지내게 하 였으며, 행직으로는 함흥 안민순시 관, 예문관직제학과 세자좌빈객, 예 조판서에이르렀다. 어릴 적부터 총명이 보통 사람보 다 뛰어났고, 품성이 온화하고 양순 (良順)하여 부모를 효(孝)로서 받 들고, 임금을 섬김에 충성(忠誠)을 다하고, 백성 살핌을 관용(寬容)으 로하며,손님을접대함에있어공손 (恭遜)으로 하며 친구와 더불어 사 귐을 신의(信義)로 하였다. 특히 학 문(學問)은 못처럼 깊었으며, 덕행 (德行)은산처럼높았다. 벼슬에서 물러나와 만년(晩年) 에 향제(鄕第, 고향집)에 돌아와서 전(全) 고을의 자제들을 가르치니 학생들이 많아 학사(學舍)가 비좁 아도 향학(向學)에 열정은 끝이 없 어 향당(鄕黨)에 아름다운 풍속(風 俗)이 사무쳤다. 이로 보아 문익공 의 학덕(學德)을 가히 짐작해 볼만 하다. 문익공은 1481년(성종 12) 9월 17 일에 별세하니 향년 63세이다. 묘소 는 안산 진목정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 으 나 찾 을 수 없 어 화 성 시 팔 탄 면 노하리에 문익공(휘 淨)을 비롯 아 드님 휘(瞋), 손자 휘 숙번(叔蕃)등 세분을 제단을 세우고 향화(香火) 를 받들고 있으며 후손들은 주로 화 성시 팔탄면에 크고 작은 집선촌을 이루고있다. 음성박씨문익공파시향봉행 우천으로노하리회관에서봉행 CM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