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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11월30일 금요일 4 (제143호) 관향조 종친회 밀성박씨 은산부원군파대종회(회장 용 권 ) 는 지 난 7 일 경 남 창 녕 군 광 계 면 계성리의 추원재에서 재지 발간 고유제 를 봉행하고 심혈을 기울여 편찬한 재지 를종원들에게배포하였다. 추원재지는 200여년 전 건립된 추원 재에 이렇다 할 재지를 발간하지 못하다 전국에 산재한 종문(宗門)들이 총 단합 하여 총의를 모으기를 수차례 거듭한 끝 에발간되었다. 용권 회장은 발간사를 통해 조상은 후 손을 바른길로 인도하는 수호신이자 이 륜강상(彛倫綱常)의 윤리지침서가 되 는 것이기에 우리의 정체성을 세우고 문 중 전통에 대한 자부심을 키우는데 이 재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 다.아울러 추원재지를 통해 파종회원의 대 단합과 돈목융화가 더욱 공고히 이루 어져 나갈 것으로 기대합니다. 라고 전 했다. 추원재지는 제1편 ‘우리의 연원’ 숭덕 전과 상현재 숭성각 알영정 등 시조대왕 에 대한 문헌을, 제2편 ‘밀성재’ 제3편 ‘추원재’ 제4편 ‘보본재’를 순서대로 소 개하고 용강서원, 모우재, 선암서원, 월 호재, 명동서사, 임호서원, 덕남서원, 운 암서원, 신계서원, 물언재, 봉양재 등 송 은 선조后서원및 재사를 제5편 전객령 공파, 제6편 순찰사공파의 순으로 편철 되었다. 추원재(追遠齋)의 정확한 창건연대 는 기록이 전해지지 않아 알 수 없으나 은산부원군(휘 영균)의 묘소가 인근에 있 고 수 백 년 향 화 가 이 어 져 오 고 있 고 , 종중 원로분들의 구전에 의하면 200여 년 전 건립되었다 한다. 그리고 1823년 중수기(重修記)를 보면 갑자(甲子,180 4)년 봄에 족보 수보시 매년 참례종원이 늘어나고 장소가 협소하여 중건을 토의 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이후 1920년 (庚申)중수를 결의하여 1922년 후손 지 묵(持默),1924년 후손 한묵(漢默)의 중 수기가 전해진다.중수기를 보면 1922년 (壬戌年)년에 중수한 추원재는 추모재 (追慕齋)라개편(改扁)하였다. 그러나 80여년의 세월 속에 퇴락해진 재사는 수차례 보수를 하였음에도 많은 불편을 초래하여 2002년(壬午) 가을 총 회에서 종의(宗義)로 뜻있는 종친을 선 두로 많은 종친들이 마음과 힘을 있는 대로 다(진심갈력,盡心竭力)하는 등 앞 다투어 성의를 모아 2003년(癸未年) 5 월에 착공하여 추모재를 추원재로 환원 (還元) 개액(改額)하였으며 전면 5칸 측면 2칸으로, 이보다 앞서 추원재 본당 착공 전 1994년 5월 서재(西齋) 공선재 (恭善齋)를 중건하였고, 2000년 9월 大 門 정광문(精光門), 동재(東齋) 청덕재 (靑德齋)를 중건(重建)한바 있다. 서재 중건부터 2007년 11월 4일 본당 추원재 낙성식까지13년간의대역사인것이다. 추원재 중수를 결정하고 재실 건립 공 사를 하는 동안 항상 부족한 기금으로 힘들었으나 많은 종인들이 기금모금에 적극 협조하였으며 특히 3·9쇼핑의 박 종구 회장, 육주재단 의 박병립 이사장, 원방기업 창업주 박경호 회장의 도움은 정말 큰 힘이 되었으며, 추원재를 중심 으로 후손들이 단합하여 은산부원군의 성덕(盛德)에 보은하고 종인간의 돈독 한 우애를 다지고 있어 종강의 면모를 엿볼수있다. 한편 이날 고유제 봉행후 가진 총회에 서 추원재지 발간에 공헌한 족보문집 전 문업체 대보사 박종우 상무와 박순엽 편 찬도유사의 공로를 치하하고 표창과 함 께금일봉을전달하였으며,곧바로이어 진 개좌에서는 다음날 봉행되는 은산부 원군과 밀성부원군(전객령)의 제관을 천거하였다. 은산부원군 제향은 우현(祐鉉) 현종 의 집례로 순엽(淳燁) 추원재지편찬 도 유사의 초헌례에 이어 동기(東祺),학용 (鶴龍) 현종이 각각 아헌관 종헌관으로 헌작하고 신현(信鉉) 축관의 독축으로 엄숙봉행 되었으며, 밀성부원군의 제향 에는 △초헌관 동근(東根) △아헌관 의 규(義奎) △종헌관 경도(景道), △집례 남현(南鉉) △축 연진(連鎭) 현종이 각 각 맡았다. 오후에는 장소를 보본재(회 장 창재) 옮겨 아드님인 송은 선생의 제 향이 전국의 후손 100여명의 참례한 가 운데 불사이군의 충절을 보인 선생의 넋 을기렸다. (※지난 3월호 4면 재실탐방 ‘추원재’ 편에 추원재 건립모금에 거액의성금을 기탁한 종원중 원방기업 창업주 박경호 회장이 누락되어 관계 종원여러분에게 심려를끼쳐드린점사과드립니다.) 은산부원군파추원재지발간 박용권회장(右)이 추원재지편찬도유사를맡아 훌륭한 재지를 발간한 박순엽 도유사에게 공로 패를전달하고함께하고있다. 순엽편찬도유사격려금전액성금기탁 고유제및추향봉행 밀성박씨 좌상공파대종회(회장 영 배)는 지난 19일 고려 공민왕 23년 해군 창설·양성에 진력하여 전라·경상·강릉 등에서 왜적을 격퇴시킨경렬공 정지 장 군의 호국충절의 숭고한뜻을 기리기 위 한 제627주기 추모제향에 참례하고, 하 동정씨 경렬공파대종회 임원진과 환담 을 나누며 향후 서로 왕래하며 정을 나 누기로하였다. 경렬공 정지 장군은 1347년 전남 나주 에서 출생하였다.어린나이에 주인을 뿔 로 받은 소를 제압하는 걸 지켜본 좌상 공은 당시 나주목사로 정지를 사위로 삼 았다. 이후 신돈에 의해 유배를 간 장인을 구명하는 길은 대과를 보아야 한다는 장 인 의 말 에 따 라 1 3 6 5 년 사 마 시 에 장 원을 하고 이듬해 1366년 문과에 급제 하였다. 1374년 전라도 안무사가 되어 왜인추 포만호(倭人追捕萬戶)를 겸하면서 양 광도안무사 이희(李禧)와 여러 차례 방 왜책(防倭策)을 건의,백성들의 부담 완 화와전략의효율화에노력하였다. 1377년(우왕 3) 예의판서(禮儀判書) 로서 순천도병마사가 되어 순천·낙안 등지에침입한왜구를연파하고,이듬해 다시 영광·광주·담양·화순 등지의 왜구 를 격파함으로써 전라도순문사가 되었 다. 1381년 밀직(密直)으로 해도원수(海 島元帥)가 되어 서남해에서 수차에 걸 쳐 왜구를 소탕하여 많은 전공을 세우 고, 이듬해 지문하부사(知門下府事)로 서 해도도원수·양광전라경상강릉도도 지휘처치사(楊廣全羅慶尙江陵道都指 揮處置使)가되었다. 1383년 5월 왜선 120척이 침입해 온다 는 급보를 받고 경상도로 가서 합포의 군사를 모아 정비하였다. 이때 왜구는 이미 관음포에 도달하였고 정지 장군이 이끄는 군사와 박두양(朴頭洋)에서 대 치하였다.이 전투에서 47척의 전함으로 대승을 거둠으로서 해도 도원수가 되었 다. 1384년 문하평리(門下評理)에 임명 되어 보다 근원적인 방왜책으로서 왜구 의 소굴인 쓰시마[對馬島]와 이키[壹岐 島]의정벌을건의하기도하였다. 1388년 최영(崔瑩) 등을 중심으로 요 동정벌이 추진되자 우군도통사 이성계 (李成桂) 휘하에 예속되어 안주도도원 수로 출전하였으나 이성계의 위화도회 군때동참하였다. 이 때 다시 왜구가 창 궐하므로 양광전 라경상도도절제체찰사(楊廣全羅慶尙 道都節制體察使)가 되어 남원 등지에서 적을대파하는공을세웠다. 1391년 광주(光州) 지산동에 물러나 있던 중 판개성부사로 부름을 받았으나 부임하지않고별세하였다. 1403년(태종3) 경렬(景烈)의 시호가 내려졌다. 장군이 왜구를 물리칠 때 직 접 착용했던 갑옷이 후손에 의해 전해져 현재 보물 제33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정지장군환삼(鄭地將軍環衫)이라 부른 다. 여러 철판에 구멍을 뚫어 철제 고리 로 연결되어 있는 갑옷으로, 유례를 찾 아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를 띠고 있다. 현재 광주시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한편 이날 추모제향에는 영배 회장을 비롯 희영 송고공 종중회장, 행순 종손, 상섭총무가참석하였으며,이자리에서 상섭총무는 좌상공께서 대대로 개경에 서 살면서 전라도와 인연이 없었는데 신 돈에 의해 처형된 장인을 대신하여 사위 인 정지장군이 처남들을 전라도로 불어 모은 것이 계기가 되어전라도에 안착하 지 않았나 생각해본다며 경렬공 종중에 감사의인사를전했다. 좌상공파대종회임원진정지장군627주기추모 제참례 좌상공파 대종회 임원진이 사위인 정지장군 추모제향에 참례하여 분향 후 예장석묘의 묘소를 찾아 참배하고 해군 정지함 관계 자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좌상공박춘사위해군창설븣2007년1800t급(214급)잠수함2번함인븮정지함븯명 명 밀양박씨 사문진사공 후(后) 강진 입향조 직장공(휘 參)의 시향이지난12일(음10.5)전남강진군강진읍영파리 선영에 서봉행되었다. 입향조 직장공의 휘(諱)는 삼(參)으로 사문진사공(휘 원) 의 15세이다. 1417년 마천목 장군이 병영성을 축조하는데 당 시 직장(直長,종7품)으로 참여하고 후에 산세 수려한 강진에 정착하여 지금에 이르는 동안 강진의 문풍을 일으키며 사대 부로서의책임과의무를다하며번성해왔다. 특히그의후손으로강진옴천에서출생하여병영에서살았 던 강재(剛齋) 박기현(1864~1913) 선생은 구한말 큰 스승으 로지역유림들의추앙을받고있다. 강재 선생이 남긴 강재일사(剛齋日史)는 1891년 7월부터 1 903년 4월까지 강진, 장흥 일대 향촌사회의 동향과 함께 1893 년 동학의 포교상황, 1894년 동학농민전쟁당시 동학농민군 측과 관군 측의 동향과 전투상황 등을 소상히 기록하고 있어 강진과 장흥일대의 동학농민혁명사를 규명하는데 매우 중요 한 문헌으로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06호로 지정되었으며, 인술을 베푸는 데는 의술이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며 탐독한 의학서적과 각종 약재거래 등의 기록과 고서 등 많은 고문서 를남겨우리나라한의학발전에도크게기여하고있다. 한편 이날 제례에는 예곤 문임(門任),병구,양곤 일가 순으 로 헌작하고 재곤 축관의 독으로 봉행되었으며, 본보 한자이 야기를 집필하는 노강 선생은 병현 현종의 안 내로 이날 제례 에 함께하고, 강재선생의 흔적을 더듬으며 선생의 업적을 기 리기 위해 사우 용전사를 들러보고 30여 년 전 서울에서 안락 한 삶을 뒤로한 채 홀로 낙향하여 선조의 유지를 받들고 있는 눌재(訥齋)박병채옹(翁)과함께환담을나누며함께하였다. /박상섭 편집국장(parkss1012@hanmail.net) 사문진사공강진입향조시향봉행 강진병영성축조시直長으로참여하고정착 사문진사공후 강진 입향조 시향이 지난 12일 봉행된 가운데 직장공 종중 의 예곤 문임 ( 門 任)이 초헌관 으로 헌작하 고 있다. 밀성박씨 졸당공의 증손 판결사공 휘 진(秦)과 그의 아들 진사공(휘 元亮), 만수당공(휘 寅亮)의 시향이 지난 18일 일 요일 경남 산청군 신안면 진태마을 신계서원에서 전국의 종 원 50여명이 참례한 가운데 봉행되었다. 판결사공은 문장이 뛰어나 학행으로 통정대부 장례원판결사에 증직되었으며, 아 들 진사공은 진사시에 올랐으며, 만수당공은 임진왜란에 망 우당곽재우,송암김면과함께의병을일으킨임란공신이다. 嶺南 三十州(영남 30주)의 百七十七儒生(177유생)들이 萬 樹堂(만수당)을 褒彰(포창)하여 주기를 請(청)하는 狀(상) 을 지 어 巡 相 (순 상 )에 게 올 렸 는 데 狀 (상 )에 이 르 기 를 經 術 禮 學(경술예학)이 儒林(유림)의 師宗(사종)이 되고 壬辰亂(임 진란)에 宗社(종사)가 危殆(위태)로움이 朝暮(조모)에 臨迫 (임박)했을 때 嶺南七十州(영남70주)에서 義聲(의성)이 寥 寥(요요)한데 특히 布衣(포의)로서 奮起(분기)하여 가동을 招集(소집)하고 郭忘憂堂(곽망우당)趙大笑 軒(조대소헌)諸 公(제공)을 더불어 同時倡義(동시창의)하여 一心誓死(일심 서사)로 方略(방략)을 贊畵(찬화)하여 최선을 다하였다고 하 였다. /박순제명예기자(경남산청군지부) 졸당공后판결사공·진사공·만수당공시향봉 행 밀성박씨 대종회(회장 채회)는 지난 4일 정기총회 및 개좌를 열어 임원진 개 편과 다음날 봉행되는 졸당공 추향 제관 분정을위한개좌를열었다. 제향 전 입재하여 개최되는 총회에서 채회 회장은 연임하여 4년을 이끌어 오 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어 부끄럽다고 말하고 이제 신임 회장은 젊고 유능한 분을 모셔 더 발전 하는 종회를 만들어 줄 것을 당부했다. 채회 회장은 공직에서 퇴직 후 종사에 입문하여 대종회 재무와총무 부회장 등 2 0 여 년 동 안 봉 양 재 중 건 등 굵 직 한 사 업에 동참하는 등 종중의 산 증인으로 이날 회의에서 종원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종무보고와 감사보고, 결산보고 등을 원안대로 처리한 후 임원진 개편에서는 구두호천 방식으로 종도 부회장을 제16 대 회장으로 추대하고 맹제, 종식 감사 는 연임, 부회장은 당연직으로 봉산재, 산천재, 신계서원, 재경, 부산, 대구, 진 주,밀양지역종친회장이다. 신임 종도 회장은 아직 젊고 미천하다 며 한사코 고사하였으나 원로분들의 적 극적인 권장을 어길 수 없어 이를 수락 하면서 인사말을 통해 아직 모든 것이 부족한 사람으로 무엇을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는데 큰 걱정이 앞선다며 회장직 은 더 봉사하라는 뜻으로 심부름을 잘 할수있도록노력하겠다고말했다. 신임 종도 회장은 국민행복산업안전 교육원 전임강사와 실버축구단을 맡아 왕성한 활동으로 젊은 층의 귀감이 되고 있으며, 각종 사회단체와 재경종친회장 과 대종회 부회장으로 종친회에서도 모 범을 보이고 있어 지난해부터 차기 회장 으로거론되었다. 한편 이날 개좌에서는 형제(亨濟) 현 종을 직일(直日)에 추대하여 △조사(曹 司) 창재(昌在), 종하(鍾夏), 광묵(光 默)△공사원(公事員)춘재(春在),현재 (鉉在), 종식(鍾植), 형재(亨濟), 인묵 (仁默) 현종을 각각 선출하여 △초헌관 인제(麟濟, 종손) △아헌관 용권(容權, 아당공 后)△종헌관 인묵(仁默)△집례 종식(鍾植) △축 삼옥(三玉) 현종을 천 거하여 다음날 봉행되는 제향에 만전을 기한 가운데 이튿날인 12일 천거된 제관 에게 천권을 부여하고,우천관계로 봉양 재 정당에서 제향 봉행후 묘소를 찾아 참배 후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졸당공 의 장 자 인 휘 승 문 (承 文 , 호 두 촌 )과 차 자인 희문(熙文, 호 송재)의 재사인 봉 산재와 산천재로 각각 이동하여 각각 선 조님의제향을받들었다. 한편 이날 제향에는 종중의 열악한 재 정소식을 접한 재경종친회에서 2백만 원의제수비용전액을부담하였으며,인 제 종손은 1백만 원을 헌성하는 등 십시 일반 헌성에 동참하여 어느 해보다 아름 다운모습이눈에띠었다. 특히 졸당공의 숙형(叔兄,셋째 형)인 아당공 종중에서 매년 참례하여 아헌관 으로헌작하면서남다른우애를보였다. 졸당공은 불사이군의 충절을 보인 송 은 박익 선생의 아들 넷 중 막내로 태어 나 형들(우당, 인당, 아당)과 함께 포은 정몽주 선생에게 수학했다.효행으로 천 거되어 호조정랑으로 이조참판에 증직 되었으며, 후손들은 졸당공이 밀양에서 합천으로 이주 후 합천, 산청, 진주 등지 에 큰 집성촌을 이루다 산업화로 인해 각자 삶의 터전을 옮기면서 서울 부산 대구 등으로 이주해 각지역마다 종친회 를 조직 친목을도모하며 대종회 발전을 함께 이루고 있어 눈여겨 볼만한 종회로 칭찬이자자하다. 밀성박씨졸당공파대종회정기총회 성료 신임회장종도부회장추대븣이튿날졸당공시향봉행 졸당공(휘총)의시향이 지난 12일우천관계로 봉양재정당에서봉행된가운데인제종손이 초헌관 으로 헌작하고있다. 졸당공제향에천거된제관들이종두회장으로부터천권을전달받고함께하고있다.(왼쪽부터종 두회장,인제초헌관,용권아헌관,인묵 종헌관,종식집례,삼옥 축관 順)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CM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