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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해주 오공 정선 선생 순국비 선생은 해주 오씨 시조 휘 인유(仁裕) 공의 22세손 휘 영수(증. 이조참판)공과 어머니 문화류씨 사이에서 4남으로 호남의 명산 통명산 줄기 비봉 마을에서 서기 1852년 12월 21일 출생하여 초명은 기선이며 자는 응량이시고 호는 비봉이시다. 유아때부터 남달리 총명하고 매사에 지혜롭고, 기골이 장대하였으며 일찍이 한학과 실학에 정통하였고, 벼슬은 통정절충장군(通政折衝將軍)이었으며, 당시 사회폐습이 만연하고, 농민들이 억울하게 수탈당하고, 일본을 비롯한 강대국들이 우리나라을 위협하고, 국가의 자주권이 흔들리고 있을때 오로지 위민 우국 충정으로 이땅에 실용주의의 정착과 부패한 각종 사회제도 개혁을 부르짖고, 동학농민운동이 전봉준 장군을 중심으로 호남 각 지역에서 들불처럼 일어날 대 이에 동참하여 선생께서 이 곳 석곡면 비봉(현, 전기) 마을을 본부로 곡성, 구례, 화순, 순천, 남원지역과 연대하여 곡성지역의 동학의 접주로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동학세력이 약화될때 부하 부장의 밀고로 1894년 12월 26일 왜병 수비대에 체포 당하여, 전남 남원으로 끌려가 같은 달 27일에 처형을 당하시었다. 그후 비봉마을은 동학농민 혁명군의 본부이고, 동학접주가 살았던 마을이라 하여 일본군에 의하여 마을 전체가 소각당하는 아품을 겪게 되었다고 한다. 금반 동학농민 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 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5조, 동법 시행령 제9조의 규정에 따라 동학농민 참여자의 유족으로 등록(등록번호 제491호) 되었기에 그 뜻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의 뜻을 모아 여기에 선생의 순국비를 세우다. 2009년 4월 21일 곡성 문화원장 김학근 근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