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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장 1910년대  독립운동 93 1편 정치 맡았다. 이외에 서울출신 이회영이 내무부장, 이동녕이 재무부장, 장유순이 농무부장을 각각 맡았다. 「경학사취지서」를 발표한 인 물도 바로 이상룡이었다. [사진3] 「경학사취지서」 안동인들은 청년 교육에 나섰다. 신흥강습소가 그 출발점이고, 이것이 신흥무관학교로 발전해 나갔다. 1912년 음력 6월 7일 통 화현通化縣 합니하哈泥河에 토지를 구입하고 학생을 수용하였다. 그 후 고산자에 토지를 구입하여 학교를 신축하고 분교를 두기도 했 다. 초대 교장에 이상룡, 그 뒤로 여준‧이광‧이세영 등이 역임하 였고, 교관은 대한제국 무관학교출신들과 신흥강습소 졸업생들 이 맡았다.6) 이것이 뒷날 신흥중학교‧신흥무관학교로 발전하여 독립군을 양성하였고, 청산리‧봉오동 승첩을 세우는 기초가 되었 6) 元秉常, 「新興武官學校」, í��독립운동사자료집��10,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2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