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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장 1910년대  독립운동 91 1편 정치 다가 차디찬 수온에 적응하지 못해 참혹한 흉년을 겪었다. 이후 로는 찬 물에 적응하는 농법을 개발하기도 하지만, 메밀농사에 힘을 기울였다. 게다가 석유와 소금이 귀해서 밤에는 전나무 뿌 리를 캐서 불을 붙여 등잔불로 대신했고, 옥수수 한 짐과 소금 한줌을 바꿀 정도였다.3) 특히 양반가문을 지키며 살던 안동인들 로서는 평생 겪지도 못한 고난의 삶을 살게 되었다. 의식주 모든 면에서 처참한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의기는 결코 꺾이지 않았다. 그들이 각오하고 견뎌내던 ‘3대 각오’ 이야기도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즉 굶어 죽는 아사 餓死, 맞아 죽는 타사打死, 그리고 얼어 죽는 동사凍死를 각오하지 않고 는 민족해방운동 전선에 뛰어들 수 없었던 것이다.4) 안동 망명객들이 목표로 삼은 도착지점은 유하현 삼원포 추가 가를 중심한 동변도東邊道 일대였다. 안동인들은 자신과 가족들의 망명으로 끝나지 않았다. 궁극적으로 많은 동포들이 이동하여야 만 독립운동의 근거지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동포들에 게 이주를 권고하는 운동을 펼쳤다. 일제경찰 기록은 김형식‧김정식 ‧이봉희‧이준형‧김규식 등 십여 명의 치열한 활동은 경북 북부지 역에서 많은 동포들이 만주지역으로 이주하는 데 기여하였고, 그 결과 1911년에 2,500여 명을 이주시켰다고 기록하였다. 그리고 1920 3) 박도, í��민족반역이 죄가 되지 않는 나라��, 우리문학사, 2000, 269쪽. 4) 김일성, ��세기와 더불어��1,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2, 12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