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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장 1910년대  독립운동 89 1편 정치 안동 인사들은 출발 날짜와 경로를 확정하였다. 경부선 열차를 탈 수 있는 곳까지 이동하여 열차로 상경하고, 그곳에서 동지들 을 만나고 협의하여 만주로 출발하고자 했다. 먼저 김형식‧이원 일이 출발하였다. 김대락은 12월 24일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10 일간 머물다가 1911년 1월 6일 남대문역(현 서울역)을 떠나, 만주 안동을 거쳐 회인현懷仁縣 항도촌恒道村(현 橫道川)에 이른 때가 1월 15일이다. 그는 한 겨울을 넘겨 4월 19일 삼원포에 도착하고, 이 도구二道溝에 거주지를 마련하였다.2) 이상룡은 1911년 1월 5일 친척들에게 주연을 베풀어 자신의 뜻 을 알리고 뒷일을 부탁하였으며, 가묘에 예를 올리고 망명길에 올 랐다. 그는 추풍령 정거장까지 가서 기차로 상경하였다. 그리고 25일, 뒤를 쫓아온 가족과 합류하여 27일에 압록강을 건넜다. 동 후면 도곡동에 자리 잡은 고성이씨 30여 가구도 이에 따랐다. 그 의 동생 봉희鳳羲를 비롯하여, 아들 준형濬衡, 손자 병화炳華(大用), 조 카 문형文衡(光民)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김대락과 그의 아들 형식衡植, 그리고 김동삼을 비롯한 내앞마 을 인사들도 만주로 향했다. 김동삼이 떠난 시기는 협동학교 제1 회 졸업식에 참석한 바로 뒤였다. 1930년대 일제 기록에 등장하 는 내앞[川前]출신 인사로 김동삼과 김정묵金定黙(김동삼 아들)‧ 2) 조동걸, 「白下 金大洛의 亡命日記」, í��안동사학��5, 안동사학회, 2000, 16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