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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장 국권회복운동 85 1편 정치 찌 오랑캐의 백성이 될까보냐”라는 시를 남기고 단식하였다. 또 그는 단식 21일 만인 11월 26일(음 10.25)에 자리에 앉게 해달라 고 말한 뒤 의관을 갖추고 순절하였다.61) 김택진(1854~1910)은 풍산 소산출신으로 이강년의진에 참가 하였다. 1910년에 나라가 망하자, 그는 가족들에게 “천만금이 생 겨도 친일행위를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단식에 들어갔고, 21일 만인 11월 28일(음 10.27)에 만 56세 나이로 순국하였다.62) 류신영(1853~1919)은 류도발의 큰아들이다. 그는 1910년에 아 버지의 순절을 지켜보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다가 고종 광무황제 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 종묵宗黙을 장례에 참례시킨 뒤, 3월 3일(음 2.2, 고종 장례일) 독약을 마시고 자결하였다. 부자가 모두 잇달아 자결하는 비장한 역사가 펼쳐진 것이다.63) 1921년 1월 이명우 부부가 함께 순국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명 우(1872~1921)는 예안면 부포마을출신이다. 성균진사를 지낸 그 는 나라가 무너지자, 1912년 가족을 이끌고 속리산 아래 갈평리 로 옮겼다가, 다시 계룡산 아래 봉서리에 은거하였다. 부모가 모 두 별세하고, 광무황제 고종이 세상을 떠나자, 그도 자정순국의 뜻을 세웠다. 1921년 1월 28일(음 1920.12.20) 광무황제의 대상 61) 金乙東, í��安東版獨立史��, 명문사, 1985, 121쪽. 62) 金乙東, ��安東版獨立史��, 명문사, 1985, 124쪽. 63) 金乙東, ��安東版獨立史��, 명문사, 1985, 12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