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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정치‧행정Ⅰ 68 안동 근현대사2 -정치‧행정- 보수적인 집권세력은 황제칭호를 쓰고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바 꾸어 국제적인 지위를 높이는 점에서는 진보세력과 입장을 같이 하면서도, 왕권강화에 무게를 두었다. 그들이 독립협회를 탄압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열강들 사이의 세력균형은 러일전쟁으로 깨어졌다. 1904년 러 일전쟁을 도발한 일본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한국에서의 독 점적 위치를 확고히 하였다. 일본은 1905년 7월 미국과 카스라-태 프트 밀약을 맺어, 미국으로부터 한국에 대한 ‘종주권’을 승인 받았 다. 8월에는 제2차 영일동맹을 통하여 영국으로부터도 한국에 대 한 ‘지도‧감리 및 보호’의 권리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나아가 러시 아와 포츠머스(Portsmouth)조약을 체결하여, 러일전쟁을 마무리 하였다. 이와 같이 일본은 열강으로부터 한국에 대한 독점적 지배권을 거머쥐었다. 1905년 11월 17일 대포와 기관총으로 왕궁을 포위한 일본은 권중현‧박제순‧이근택‧이지용‧이완용 등 ‘을사오적’을 앞 세워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했다.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상 ‘박제순-하야시 억지합의’에 지나지 않았다. 이로 말미암아 한국의 외교권이 빼앗기고, 1906년에 통감부가 설 치됨에 따라 대한제국의 주권은 사실상 박탈되고 말았다. 조약 소식에 한국인의 반대는 격렬했고, 파기를 요구하는 국민 운동이 펼쳐졌다. 곳곳에서 시위가 일어났으며, 전‧현직 관료와 양반유생들의 상소가 줄을 이었다. 또 민영환‧조병세‧홍만식 등 순국하는 자들이 이어졌다. 국권을 되찾기 위해 항일투쟁과 구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