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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장 국권회복운동 57 1편 정치 [사진6] 학봉 김성일의 종가 -이곳에서 김흥락이 욕을 당하고, 옹천전투를 치르고 숨어 있던 포대장 김회락과 척후장 김진의가 끌려갔고, 김회락은 그 날 총살되는 비운을 맞았다. 利川義兵과 연합을 시도하기도 하고, 김도화가 봉정사로 의진을 옮기 고 춘양면 春陽面에서 포수 40여 명을 의병에 흡수시키고, 군자금 모 금에 나선 것도 그와 마찬가지다.17) 의병항쟁은 곳곳에서 계속 전개되었다. 안동의진‧선성의진‧봉 화의진 ‧의성의진‧영양의진‧예천의진 등이 5월에도 활발하게 투 쟁을 전개하고 있었다. 안동의진은 지속적인 투쟁을 결정하고, 봉정사로 본부를 옮겼다.18) 또 안동의진은 선유사에게 「격고문」 17) í��赤猿日記��1896년 3월 4일조(양4.16). 18) ��赤猿日記��1896년 3월 4일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