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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정치‧행정Ⅰ 56 안동 근현대사2 -정치‧행정- 안동 관찰사 이남규씨가 이달 스무 나흗날 군부에 보고를 하였 는데 참 의병은 대군주 폐하께서 선유하옵신 칙교를 보고 안도 하거니와 거짓의병은 지금 많이 모여 행패가 무수한데 비도 괴 수 서상렬이가 여덟 골 비도를 모집한 것이 삼천여명이라 본 고을에 웅거하여 야료할 때 그때 도망하던 순검들이 여염집에 들어가 무례한 행실을 하니 부인들이 자기 젖통과 손을 베고 죽은 이가 무수한지라 서가가 삼천여명 비도를 함창 태봉에 가 서 일본병정으로 싸울 때 일시에 비도들이 사면으로 흩어져 서가가 크게 패하여 예천과 풍기로 들어가 노략하고 도망하 였던 순검 수십인이 일본 병정과 힘써 본 고을에 불을 놓아 수 천호가 탈 때 나라 재물과 사사 재물이 다 타고, 관부는 다행 히 면하였다더라. 16)(밑줄; 필자) 안동의병은 일본군이 물러난 후 의진을 다시 갖추고 재항전을 준비하였다. 4월 3일(음 2.21) 안동부내를 떠난 의진은 우선 본부를 개목골짜기(介木谷; 용상동 안동댐 역조정지댐)로 옮겼다. 4월에 서 5월초 임하 금소와 신덕에 머물던 모습이 보이고, 일직면 귀미 나 의성의 고운사, 길안 도연陶淵과 용담사龍潭寺(길안 금곡리) 등에 머문 기록이 보인다. 안동의진은 흥해興海의 최세윤崔世允을 좌익장 으로, 영양의병장 김도현을 부장에 각각 임명하여 세력을 만회하려 안간힘을 썼다. 또 남한산성에서 관군에 패해 이동해 온 이천의진 16) 《독립신문》1896년 4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