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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장 국권회복운동 55 1편 정치 [사진5] 《독립신문》 1896년 4월 30일자 적은 수의 일본군에게 오 히려 밀렸다. 중군장 권 재호가 이끈 안동의진은 분전하였으나, 화력의 열 세로 후퇴하고 말았다. 이 전투에서 안동의병은 20 여 명이 다치거나 죽었다. 안동의진은 예천을 거 쳐 안동으로 물러났고, 선 성의진은 학가산 기슭을 거쳐 예안으로 돌아왔다. 일본군은 인근의 의병진압에 나섰다. 일본군은 안동 시가지 입구 송현까지 추격한 뒤, 안동부를 의병의 소굴이라 여겨 시가와 민 가에 불을 질렀다. 마침 바람을 타고 불길이 안기동에서 시작하 여 탑곡塔谷(법흥동 골짜기)까지 덮쳐,14) 안동 도심 1,000여 호의 민가가 불타버렸다.15) 4월 2일(음 2.20)에 벌어진 참혹한 일이었 다. 안동부에 불을 지른 일본군은 보병 제10연대 제1대대 소속의 50여 명이었다. 14) í��赤猿日記��1896년 2월 21일조(양4.3). 15) 李南珪의 상소문, ��高宗實錄��(中卷), 34쪽; 「辭安東察使疏」, ��修堂集��권2, 「疏」; 金道鉉, 「碧山先生倡義顚末」, ��독립운동사자료집��2, 독립운동사 편찬위원회, 1983, 72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