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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장 개화기  안동의  행정 453 2편 행정 되는 구조를 근간으로 하여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면리임은 수령 의 지휘‧감독 하에서 향청‧향리의 중간단계를 거쳐 면리행정을 수 행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 같은 현상은 면리임을 가급적 품관品官 이나 유식층有識層에서 선임하려는 중앙의 의도와는 달리 관직을 선호하는 사족들이 그것을 기피하면서도 수령과 면리임 사이에서 향리의 발호를 견제하고 향촌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을 자임하 며 행정에 개입하게 된 결과로 초래된 것이기도 했다. 이에 따라 안동지방의 면리제는 중앙과 지방의 행정적 연대와 함께 향촌민 의 권익을 보장하는 자치적 기능을 강화하는 이중적 효과를 지향 하는 방향으로 운영되어 왔던 것이다.10) 2절 갑오경장 이후의 지방행정 근대적 의미의 지방자치가 우리나라에서 시대적 사조로나마 국민 사이에 의식된 것은 갑오경장(1894) 이후의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근대화 과정의 첫 시도인 갑오경장은 자율적인 것이 못 되고 일본에 의한 타율적 강압에 의한 것이었다. 1876년 일본의 무력에 의하여 강화도조약이 체결되고 개항이 10) 앞의 글, 27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