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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정치‧행정Ⅰ 48 안동 근현대사2 -정치‧행정- 다시 일본의 포위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았다. 단발령 시행 한 달 남짓 지나 1896년 2월 11일 국왕은 러시아공사관으로 도피하였다. 이를 ‘아관파천’이라 부른다. 1896년 봄에 의병들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그 중에서도 삼남일대가 격렬하였다. 1895년 말에서 1896년 초에 걸쳐 의병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 다. 안동의병도 1895년 12월초에 시작되었는데, 단발령이 도착하 자마자 통문이 돌기 시작했다. 통문이나 격문은 하나 같이 무력 저 항을 일으키는 이유를 밝혔다. 명성황후시해라는 국가적 모독과 단발령에 따른 극단적인 혼란에 대처할 방안이 결국 무력으로 저 항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 그 핵심이었다. 안동의병을 탄생시킨 장소는 봉정사였다. 1월 17일(음12.3) 봉 정사에 4‧50명의 유림대표가 참석한 면회面會의 결의에 따라 1월 20일(음12.6)에 안동부 삼우당三隅堂 앞뜰에서 의병 결성대회가 열 렸다. 수좌首座로 류도성‧김흥락‧류지호‧김도화‧류지영6) 등 5명의 지 도자 이름이 나타난다.7) 1만 명이라는 엄청난 인원이 참가한 이 대 회에서 맨 먼저 참봉 권세연을 의병장으로 뽑았다.8) 그는 격문을 발표하고 관찰사 김석중金奭中 체포를 명하였다. 그러자 그는 밤을 타고 도망갔다. 제1차 안동의진이 결성되자, 안동부성 안에 각각 6) 류지영(1828~1896)은 안동시 풍천면 하회출신이다. 7) 李兢淵, í��乙未義兵日記��1895년 12월 6일조. 8) 권세연(1836~1899)은 봉화군 봉화읍 닭실[酉谷]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