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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장 민주화  이후의  안동의  정치 413 1편 정치 은 이후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까지 지칭될 정도로 조작 혐의 가 짙었지만, 이 사건을 빌미로 정권과 언론은 운동권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었다. 그 결과 5월 이후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전국의 시위와 저항은 급격히 위축되었고 6월 지방자치 선거에 서 여당인 민주자유당이 전체 의석의 65%를 차지하는 대승을 거 뒀다. 1991년 5월 전국적인 학생운동은 규모 면에서 6월 민주화항쟁 에 못지 않았으나 구체적인 투쟁의 목표를 제시하지 못해 결국 아 무 성과도 없이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정원식 총리 사건과 김기설 유서대필 사건 이후에는 중산층이 민주화운동에서 등을 돌리기 시 작했다. 이후 급진적 사회운동은 급격히 위축되기 시작했고 학생 운동도 마찬가지였다. 안동대학교는 1980년대 후반 이래 민족 자주의 이념과 전통을 강조하던 경향이 강한 대학이었다. 이는 안동의 전통문화와 안동 대학교의 학생운동이 인문‧문화적 측면에서 주로 전개된 지역 특 성이 작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대체로 1980년대 당시 학생운동 의 이념 구도에서 민족‧자주‧통일을 지향하는 급진 민족주의가 민족해방계열의 특징이라고 할 때, 이는 곧 반미자주노선으로 이 어지게 된다. 광주항쟁의 배후로 지목되던 미국에 대한 반감은 외 21) 2007년 진실과화해위원회는 1991년 유서대필 사건이 조작사건이었음을 발표하고 재조사와 복권을 촉구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