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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장 민주화  이후의  안동의  정치 409 1편 정치 의’를 청와대에서 열고 “이들의 활동을 정면대응하여 엄정히 다 스려 척결할 것”을 과제로 삼아 “공권력과 공안기관의 단속차원 뿐만 아니라 범정부적이고 범국민적인 차원에서 모든 역량을 결 집”할 것을 강조했다.19) 1989년 상반기 이후, 노태우 정권은 지 속적으로 ‘공안정국’을 조성하였으며 대통령의 지시와 방침에 따 라 1989년 4월 3일에는 검찰‧경찰‧안기부‧보안사‧문교부‧노 동부‧문공부 등 관계기관으로 ‘공안합동수사본부’(합수부)를 구 성하고, 전국 12개 지역 검찰청에 ‘지역공안합동수사본부’를 상설 하였다.20) 1990년 3당 합당 직후 정권의 보수화는 분야별 정책 및 정치분 야에서 매우 강경하게 진행되었다. 1월 22일 합당 선언 이후 2월 들어 노동법안을 폐기하고, 3월 들어 집권 1기의 경제민주화 조치 를 포기 내지 유예하고, 경제정책을 성장 위주로 돌렸으며, 10월 이 후부터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여 조직폭력배는 물론 사회운동 조직에까지 강경하게 대응하였다. 전국 학생운동을 주도하던 전대협은 1991년 4월 11~12일 연세 대학교 정기총회에서 반민자당 민주연합전선 구축을 중심과제로 채택했다. 이어 학생들의 반민자당 투쟁이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4월 연이어 벌어진 시위에서 26일 진압 경찰이 휘두른 곤봉에 명 19) 《동아일보》‧《경향신문》 1989년 4월 7일자. 20) 《조선일보》‧《경향신문》 1989년 4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