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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장 민주화  이후의  안동의  정치 407 1편 정치 적인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안동대학교의 분신사건은 다 시 전국 학생운동은 물론 정부와 일반에까지 큰 충격을 안겨다 주 게 된 것이다. 1991년 안동대학교 분신사건은 한국 민주주의의 역 사에 특유한 해당 국면의 몇 요인들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학생운동이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할 정도로 급진화된 당시 의 이념적 급진성이다. 안동대 분신사건의 배경으로서 당시 민주 화 초기 학생운동의 급진성, 정권과 저항운동의 관계를 꼽지 않을 수 없다. 둘째, 한국 민주주의에서 고비 때마다 사태 확산의 기폭제 역할을 한 ‘열사’의 상징성이다. 4‧19의 김주열, 1970년 전태일, 1987년 박 종철과 이한열의 경우가 모두 이에 해당된다.17) 셋째, 안동대학교가 안동지역의 ‘절의와 지조’를 직간접적으로 대표한다는 상징성이다. 지역 유일의 국립대학교 재학생이라는 위 상은 공동체에 대한 책임성‧사명감‧도덕감을 불러일으켜 학생운 동의 동기를 자극했던 것이다. 특히 둘째 요인과 셋째 요인이 서로 상호작용하게 되는데, 문화적 ‧역사적 배경 요인으로 인해 민족적 자주의 가치를 강조하는 전통적 기풍이 유달리 강했던 안동대학교 학생운동의 특징이 그대로 반영되어 정권과 체제에 대한 반대와 저 항이 분신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진 것이다. 17) 맥락은 다르지만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에 이은 거대한 추모 열기와 정부에 대한 반감 확산 역시 비슷한 유형으로 해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