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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장 민주화  이후의  안동의  정치 405 1편 정치 이 과정에서 일부 반미 구호가 등장했고, 집회와 시위 도중에 수입 농산물에 반발한 일부 농민들은 성조기를 불태우고 반미 구 호를 외치는 과격한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시위에 참여한 재야 와 대학가 일각이 주장하던 급진적인 대안이 주장되기도 했다. 당시 다수 농민들은 의식화되거나 급진 이념을 수용하지는 않았 다. 그러나 전국과 지역 단위 농민집회와 시위에 대한 참여와 호응 이 수백명에서 수천명에 이를 정도로 높았는데, 이는 그만큼 민주 화 이후 개방과 자율의 미명 아래 농촌사회가 위기를 맞고 있었고, 수입 농산물에 대한 위기감, 정부의 농정대책에 대한 불만, 그리 고 권위주의정권 시기 2‧3차 산업에 비해 줄곧 홀대를 받은 데 따 른 누적된 피해가 커진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농촌사회의 현 실은 농민들의 의도와는 달리 ‘식민지 반봉건사회론’을 주장하던 민족해방계열 혁명이론의 현실적 근거로 과장되어 활용되기도 하였다. 특히 1990년 들어 새로운 세계 무역질서로서 신자유주의 개방 을 원칙으로 하는 우루과이라운드에 대한 농민들의 우려와 반대 가 정치투쟁으로 전환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 당시 농민집회 는 학생운동과 연대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더구나 1990년 3당 합당 이후 노태우 정부의 경제정책이 신자유주의 노 선으로 전격 선회함에 따라 농업분야에 대한 시장화 조치, 대외 개방이 가속화되어 크게 반발하게 되었다. 1990년 4월 24일 6개 도연맹 72개 군농민회가 가입하여 전국 농민회총연맹이 발족하였고, 9월부터는 우루과이라운드 저지 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