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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장 민주화  이후의  안동의  정치 401 1편 정치 권력의 기만적 개량술책이며 민중이 본질적으로 얻은 것은 없 고 6‧29선언의 성과는 개량적 요구의 수용에 불과하다”는 것 이다. 이와 같이 1980년대는 한국 좌파세력의 비약적인 성장기 로 기록될 정도로 이 시기 동안 좌파 운동은 그 어느 때보다 활성 화하였으며 특히 대학가와 지식인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 사하였다. 일부 학생운동의 선도세력이 ‘1985년 유화 국면’의 영 향으로 지하에서부터 활성화하여 이념적으로 사회주의를 받아 들였고, 행동이 과격해졌으며 반미운동과 계급운동이 태동하 였다.12) 대학가와 재야 및 노동계 일부에서, 비합법조직들이 나름의 체 계화를 통해 성장하였는데 1980년대 중반 무렵까지는 ‘전국학생 총연합’(전학련)과 그 전위조직인 ‘민족통일 민주쟁취 민중해방 투쟁위원회’(삼민투)가 주도했다. 이들은 1984년 11월 민정당사 를, 1985년 5월 서울 미국 문화원을 점거하여 사회적인 충격을 주 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이들은 목적과 의식이 뚜렷한 ‘사 회주의자’로 볼 수는 없고, 당시의 현안이었던 ‘광주 문제 해결, 전두환정권 타도’를 우선적 과제로 삼고 있었다. 학생운동이 이 념적으로 급진화한 배경에는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비극적 사태 가 뿌리박고 있었다. 광주민주화운동은 운동권으로 하여금, 기 존 체제를 유지하는 한 민주화와 사회정의는 실현되기 어렵다는 12) 김영명, í��한국현대정치사��, 을유문화사, 1992, 366-36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