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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정치‧행정Ⅰ 370 안동 근현대사2 -정치‧행정- 양심선언을 하게 되었다. 그는 희생을 각오하고 농민운동을 위해 다음과 같이 양심선언을 하였다. “본인은 79년 5월 5일 영양 버스정류장에서 정체불명의 두 사 람으로부터 납치당해 안동을 거쳐 포항 모 건물(포항제철 부근 잿빛 건물) 안에서 이유 모를 폭행을 당하고(체제에 반항하는 놈은 그냥 둘 수 없다며 폭행하였음) 울릉도까지 15일 동안 강 제 격리된 상태에서 불안한 날들을 보낸 사실이 있어, 이를 교 구 정의평화위원회에서 구성한 조사단과 농민회 조사단, 본당 신부님께 하느님께 받은 양심에 의해 진술한 바 있습니다. 이 사실은 차후에 어떠한 일 있어도 ‘사실’이며, 만약 번복된다면 이는 외부적 압력이나 위협에 의한 강제적 결과일 것입니다. 가난하고 억압받는 농민들과 함께 일하려는 나의 동료 형제들 에게 또 다시 쏟아질지도 모르는 폭력과 압력 밑에서 주여! 작 은 저희들을 지켜주소서. 영양 천주교회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 아래서.” - 1979년 7월 5일 오원춘의 행방불명은 영양천주교회의 야외 미사에 오원춘이 참 석하지 않은 것이 확인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정작 교회가 오 원춘의 고백을 통해 사건을 공식적으로 알게 된 것은 납치에서 돌 아온 지 20일이 지난 6월 13일이었다. 이에 안동교구는 7월 17일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통하여 전국에 폭로하였고, 이에 대한 경 찰의 답변을 요구하는 농성을 벌이게 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해서 경북도경은 안동교구가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농민운동 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