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page

9 장 민주화운동  시기의  안동정치 369 1편 정치 3. 가톨릭농민회사건의 경과, 영향, 의미 1970년대 중반부터 정부는 저농산물가격 정책으로 증대되지 않 는 농업생산을 늘리기 위해 행정지도라는 명목으로 신품종 강제 경작을 추진하였다. 이에 적극적으로 농민운동을 전개해 온 가톨 릭농민회는 쌀생산비 보장운동과 농협민주화 운동을 중심으로 정부의 획일적인 영농행정에 대응해 왔었다. 오원춘 사건은 이러 한 가농의 활동과 정부 및 농협간의 갈등이 전면적으로 표출된 사건이다. 1978년 경북 영양군 청기면 농민들은 군 및 농협에서 알선한 감자씨를 심었으나 싹도 나지 않아 감자농사를 망치게 되었다. 따라서 가농 청기분회 회원들은 피해농민들과 함께 대책을 논의, 피해상황을 조사하여 피해보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정부와 농협 이 피해농민들에게 회유, 협박으로 일관하여 비회원 농민들은 중 도에 포기했으나 회원 농민들의 끈질긴 활동과 안동교구 사제단의 지원으로 생각보다 빨리 피해액 전액을 보상받았다. 그후 1979년 5월 5일 이 보상활동에 앞장섰던 청기분회장 오원 춘이 행방불명되었는데 20일이 지난 후 안동교구가 오원춘이 납 치, 감금테러 당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밝히면서 안동교구 농민 회사건이 불거지게 되었다. 1979년 5월 5일 오원춘은 신원을 알 수 없는 2명에게 납치되어 울릉도에 감금되었다가 5월 19일 집으 로 돌려보내졌다. 납치사실을 교회에 보고하기까지 상당한 위협 을 느꼈던 그는 6월 13일 농민운동을 위해 진실을 밝혀야겠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