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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장 민주화운동  시기의  안동정치 367 1편 정치 살 농민이 속출하는 가운데 농민이 살아남는 길은 농가 부채 해결 과 외국 농산물 수입 저지 투쟁에 있다고 보고, 4월 16일 교구 연 합회는 ‘농민, 노동자를 위한 기도회 및 농가 부채 탕감 농민 대회’ 를 개최하였는데 이 당시 안동지역 시위에서 최초로 최루탄이 진 압 수단으로 등장했다. 1987년 6월 항쟁기, 민주화운동의 절정 단계에서 호헌 철폐와 민주개헌 쟁취 국민대회가 안동에서도 열렸으며 안동‧상주‧점촌‧ 봉화‧영덕‧청송‧영양 등 7개 지역 국민운동본부 조직 결성에 참여 하고 지역 순회, 광주 사진전, 비디오 상영회(의성‧상주‧봉화‧안 동‧청송‧문경‧예천 등)를 통해 군사정권의 본질을 폭로하는 데 주력하였다.26) 1987년 들어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추모 미사와 고문 중단을 요구하는 항의 집회가 2월 9일 열렸으며, 4월 29일 ‘호헌철 폐 및 민주개헌을 위한 7일 단식기도’가 사제단에 의해 열렸다. 이 당시 안동지역의 농민‧노동자‧대학생들이 대규모로 참여하여 전국 차원의 6월 항쟁까지 장기적인 투쟁을 수행했다. 6월 항쟁 이후 안동 연합회 활동은 이처럼 대선 국면에서도 천만 농민의 생존권 실현을 위한 반독재 민주화 투쟁과 야권 후보 단일 화 및 공정 선거 감시단 활동으로 모아졌다. 한국 농업의 주요 보 26)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연합회 http://www.andongkcfm.or.kr/history _1979.html. 2009년 10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