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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정치‧행정Ⅰ 366 안동 근현대사2 -정치‧행정- 이 하나되는 운동 실천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공해 문제, 핵문제, 물질 문명 문제, 자본과 권력 문제, 미국 문제, 통일 문제 등이 농민 문제와 밀접히 연관된 하나라는 급진적 인식 이 더욱 심화되었고, 민주화 없이 농민 문제도 해결될 수 없으므로 실천력 확보 방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천주교 안동교구는 1981년 전국 교구에서는 최초로 지역 농민운 동의 거점이 된 ‘안동농민회관’을 건립하였다. 1982년부터는 ‘농촌 사회의 민주화’를 활동 목표로 삼아 정치적 저항을 전개했으며, 1983년 유례없는 수매가 동결조치에 대한 반대 운동을 전개하였다. 1983년 서울 가톨릭상지회관에서 결성되었던 민주화운동청년연 합, 1985년 재야 민주화운동가들이 결성한 민주통일 민중운동연합 등의 영향을 받아 각 지역에서 연합 운동체들이 만들어지기 시작 했다. 그리고 이들 단체들이 이후 야당, 재야 정치인들과 연대하 여 1987년 6월 항쟁을 선도하게 된다. 당시 안동교구 연합회는 1984년 전국 농민대회를 개최하여 남북 물자 교류와 때를 맞추어 “우리도 농사 기술이나 종자를 교류하는 등 밥 먹는 것부터 시작해 휴전선을 걷어치우고 7천만 겨레가 하나 되는 날을 만들자”며 전국의 사회운동단체에서는 처음으로 획기적 인 남북한 농업인 교류를 제안하기도 하였다. 1985년에는 외국 농축산물 수입 반대 활동, 무분별한 외국 소 수 입으로 인한 소값 피해 보상 운동이 전개되었고 7월 열린 소값 피 해 보상 소몰이 시위는 인근 농민 100여 명이 참가 했다. 1986년 들어 외국 농‧축산물 수입과 농가 부채의 폭증으로 파산 농가와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