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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장 민주화운동  시기의  안동정치 365 1편 정치 유신체제 반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민주주의를 유린하 는 군사재판에 출두할 수 없다는 지학순 주교의 양심선언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천주교 내부에서도 9월 23일, 젊은 사제들이 중심이 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등장했고 즉각 대응에 나 섰다. 당시 안동교구는 전국 최초로 대규모 문화회관을 건립(1973년) 하였으며 사목국에서는 한국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협의회(1977 년 8월 24일 창립)를 조직하고 연합회 조직을 건설하는 준비 작 업을 하고 있었다. 안동지역의 특성상 이 두 부문이 대다수 지역 민들과 만날 수 있는 큰 통로요, 틀이었기 때문이다. 문화회관은 목성동 성당과 더불어 민주화운동의 집회 장소로 사용되었다. 그 리고 이후 전두환 정권 초기에 건립된 농민회관과 함께 군부권위 주의정권에 맞서는 안동지역 사회운동의 거점이 되었다. 1977년 10월 18일, ‘농민‧노동자‧양심수인 석방을 위한 기도회’가 열려 류 강하 ‧정호경 신부가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문화회관 안에는 동부동 성당이 있었는데, 10월 30일에는 이 사건으로 구속된 두 신부를 위하여 정의구현사제단 전원과 안동교구 사제단 공동으로 전국 가톨릭 차원의 미사가 목성동 성당에서 열렸다. 1980년대 들어 안동지역 가톨릭연합회는 활동 목표를 ‘전조직 활성화와 확대 강화’로 잡고 5‧17 이전까지 민주적 농정 실현과 농 민 권익의 제도적 보장을 위해 전국적 집회와 활동에 활발히 참여 했으나, 5‧18광주항쟁 이후는 조직의 질적 고양과 체계적 관리에 주력하면서 70년대 운동의 부족함을 솔직히 자인하고 삶과 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