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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장 민주화운동  시기의  안동정치 363 1편 정치 교였다. 그는 새 교구의 기초를 다지려고 행정체계를 확립하면서 조직을 정비하고 농촌경제 질서를 바로 잡는 데 주력했다. 두봉 주교는 1990년까지 주교좌로 활동하며 목성동 성당이 민주화운 동의 본산이 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보수적이고 소극적인 사회 참여의 성향을 지닌 천주교가 민주화운동에 문을 열고 적극적으 로 나서게 된 것은 1974년 민청학련사건이 벌어질 당시 유신정권 이 원주교구 지학순 주교를 구속하면서부터이다. 지학순 주교는 민청학련사건과 관련이 있다며 긴급조치 위반 혐의를 쓰고 구속 된 것이다.24)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1974년 10월 1일 국군의 날 연설에서 지 학순 주교를 지칭하여 ‘환상적 낭만주의자’라고 직접 비난하고 나섰다. 국무총리 김종필은 한국기독교실업인회 주최의 ‘국무총 리를 위한 기도회’에서 í��성경��「로마서」13장을 인용하여 “교회 는 정부에 순종해야 하며 정부는 하느님이 인정한 것”이라고 하면 서, 정부를 비판하는 그리스도교인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심판하 겠다고 선언하였다. 1975년 2월 사제단이 유신헌법 거부운동을 벌이자, 당시 문화공보부 장관 이원경은 담화문을 통해 “최근 일 부 종교인들이 종교 본연의 위치를 벗어나 정치활동까지 지나치 게 관여하고 법질서를 혼란시켜 사회 혼란을 조장하는 언행을 거 24)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희망세상��2005년 2월호, 안동 목성동 성당 김영 필 주임신부 인터뷰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