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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장 민주화운동  시기의  안동정치 355 1편 정치 ‘정화작업’을 거쳐 치른 1981년 전두환 정권의 첫 총선거에서 경상 북도 지사를 지낸 안동김씨 김무연이 유력하였으나, 신군부의 실세 로 등장한 육사출신 권정달이 고향 안동에서 총선에 출마하자 김무 연은 가문끼리의 합의 결과로 사퇴하였다. 그리고 ‘나라의 인물을 안동이 배출하자’는 명분으로 김씨와 권 씨 문중이 연합하여 권정달을 지원하였다. 명분은 나라의 인물이 었지만, ‘잡성’ 정치인에게 국회의원이 돌아간 8년 동안의 경험이 두 유력 문중에게 연합 체제를 결성하도록 자극한 것이었다. 권정 달은 당시 58.4%의 전국 최고 득표율을 기록하며 당선되었고15), 1985년 2월, 부분적인 자유화조치 이후 양 김씨의 민추협과 신한 민주당의 전국적 열풍이 불었던 12대 총선에서도 무려 59.5%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되었다. ‘관권’‧‘금권’은 물론 김씨와 권씨 문중 ‘가권’이 함께 작용한 것이다. 12대 총선 당시 전국에서 민정당 득 표율이 35%에 그쳤고, 야당들의 지지율이 무려 59%에 이를 정도 로 전국적인 민심의 이반이 일어난 것에 비추어 볼 때, 민정당 실 세 국회의원이었던 신군부출신 권정달 의원의 재선은 안동지역의 야성이 유신체제에 비해서는 점차 약해지는 것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16) 15)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역대선거정보시스템. 16) 박형민, 「혈연공동체의 정치적 영향에 관한 연구 - 경북 안동의 사례를 중심으로」, 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7, 55-5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