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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장 민주화운동  시기의  안동정치 351 1편 정치 지만 마지막 성골이란 점에서 본질적으로는 폐쇄적이고 보수적 인 성향의 막다른 선택이었다는 이중적 평가가 가능하다. 여기에 관권과 금권의 개입을 고려하면, 한국 최초 국회의원을 안동이 배 출했다는 임영신 당선은 선덕여왕의 경우와 유사하게 볼 수도 있 을 것이다. 1960년대와 70년대 박정희 정권 시기 일련의 총선에서는 여 당 공화당과 야당 신민당이 서로 의석을 주고 받거나 중선거구 제에서 1석씩 나란히 당선되는 등 지지율이 그다지 큰 차이가 나 지는 않고 비슷했다.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입장을 가르거나, 선 택을 기다리는 정치적‧사회적 구분선을 균열이라고 한다. 남녀 간의 균열, 계층 혹은 계급간의 균열, 지역간의 균열 등이 그 예 이다. 권위주의체제였던 당시는 민주와 반민주의 쟁점 구도가 뚜렷했던, 즉 선거정치과정에서 유권자들이 쟁점별로 투표할 수 있던 균열 구조가 존재했던 것이다. 권위주의정권 시기의 안 동정치는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중앙정치권의 논리가 압도적 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중앙의 정치논리가 여당 우위의 결과로 그대로 이어지지는 않 았다. 이승만 정권 말기였던 1950년대 말의 선거결과를 보면 1958년 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이 35%, 야당이 15%를 차지했지만, 1960년 3‧15선거에서 자유당이 33%를 차지한 데 비하여 민주당 을 포함한 야당은 43%로 여당을 압도했다. 문중의 영향력이 압도 적이기는 하되, 첨예한 정치적 이슈가 존재하거나 정권에 대한 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