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2page

Ⅰ정치‧행정Ⅰ 346 안동 근현대사2 -정치‧행정- 장으로서 집권 공화당이 총선에서 신민당에게 지속적으로 밀리 는 형세를 보여주었다. 당시 안동출신 공무원이나 교직자들이 정 부의 경계로 말미암아, 고향에서 떨어진 곳에 배치받는 인사상 불 이익도 감수해야 할 정도였다.7) 5‧16 군사정권이 끝난 이후 민정 이양과정에서 치러진 총선인 1963년 11월 26일 6대 총선에서는 민주공화당의 권오훈이 당선되었고, 1967년 6월 8일 7대 총선에 서는 역시 여당 김대진이 당선되었다. 1960년대 후반 들어 박정희 정권의 장기 집권과 강권 통치 경향 이 심해졌으며, 급기야 196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의 3선을 위 한 개헌이 시행되었다. 개헌 후 1971년 대통령선거를 치러 박정 희가 당선된 직후인 5월 25일 8대 총선부터 안동지역에서 ‘민심 의 이반’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8대 총선 당시 42세의 젊은 정치인이 자 야당 신민당 소속이던 박해충 후보가 당선된 것이다. 박해충은 1960년 민의원선거에도 당선된 적이 있지만 박정희 정권의 지역 적 기반이던 경북지역에서는 중앙정치 관점으로 볼 때 하나의 이 변으로 비쳤다. 유신체제 치하에서 치러진 첫 번째 총선이었던 1973년 2월의 9 대 총선에서도 안동의 이러한 반정부 야당 지지 성향은 지속되었 다. 선거구별로 2인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 아래에서 치러진 9대 총선에서 여당 공화당의 김상년 후보가 당선되기는 하였으나, 선거 7) 안동 농민회관 관장 이진구선생의 증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