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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정치‧행정Ⅰ 332 안동 근현대사2 -정치‧행정- 운동 시기 안동의 정치사는 하회마을과 í��징비록��에 대한 박정희 대통령의 관심과 애착이 보여주듯 정권이 심혈을 기울여 지원하 고 홍보한 충효사상의 본향으로 존재한 동시에, 바로 그 정권을 무너뜨린 1979년 민주화운동의 촉발 기지로서 그해 전국 최초로 시 단위 지역에서 반정부 거리 촛불집회 및 대중 시위가 일어난 지역이기도 했다. 역대 선거결과를 보면 안동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인 문중공동 체의 영향력이 선거정치과정에 나타난 것은 이미 해방 이후부터 나타난 것으로 확인된다. 이러한 가문의 결속력은 중앙정부에 대 하여 독자적인 위상을 주장하거나 확보하는 하나의 카드이기도 했다. 근대화 초기에 나타나는 지방의 전통과 중앙의 근대가 마 찰을 빚는 현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승만 정권 초반기인 1950년 전쟁 중 지방자치가 실시되면서 시장‧군수‧읍면장 선출���서 문중은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는 안동의 문중은 물론 전체 인구 구성에서도 알 수 있는 일이 다. 대체로 안동지역에서 인구통계상 비중이 안동권씨가 14%, 안 동김씨 10%, 풍산류씨 4.5%, 의성김씨 4.5% 정도로 나타난다. 즉 이들 4대 성씨가 안동 전체 인구의 30% 내외를 차지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양반 가문’에 속하는 문중 인구가 저마다 2~4%정도씩을 차지하여 다른 시도와는 상당히 다른 인구 구성을 보여준다. 문중 단위의 의사가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1960년대 이후 권위주의정권 기간 동안 임명직 군수와 시장에 대하여 안동 사람들은 이들을 ‘자신을 통치하는 사람’이라기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