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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장 제1공화국과  4‧19혁명 327 1편 정치 등에 동원되어 불만이 높았다. 4월 28일 대구에서 처음으로 교원 노동조합 발기회가 발족되어 활동하면서 5월 7일에 교원노조를 결성하였다. 안동에서도 5월 4일 안동읍의 초‧중‧고등학교 교사 들의 대표가 모여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교원노조 설립운동에 들어갔다.39) 그 결과 같은 달 15일 군내 60여 초‧중‧고등학교 대 표 2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교육자의 권익 옹호와 자주성 확보 를 목표로 교원노조를 설립하였다. 위원장은 김만기金萬基(안동농 고), 부위원장은 권영모權寧模(안동사대부고)와 김홍모金洪模(중앙초 등학교)가 선출되었다.40) 경북 시‧군단위의 교원노조가 속속 결성되자 도 단위 연합체의 구성이 추진되어 경북지구교원노동조합연합회가 결성되었으며, 이어 전국 단위의 한국교원노동조합총연합회가 결성되었다. 안 동의 교원노조는 이후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교원노조로 분리 되었다. 초등학교의 위원장은 김홍모, 중‧고등학교의 위원장은 김 만기가 선출되었으며, 조합원의 수는 680여 명에 이르렀다. 교원 노조는 교육의 자주성 확보, 학원의 민주화, 정당 및 관권으로부 터 독립, 교육자의 신분 보장과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강령 으로 내세우고 활동하였다.41) 39) 「교원노조 추진, 안동지구서도」, 《영남일보》 1960년 5월 14일자. 40) 「안동에 교직노조」, 《영남일보》 1960년 5월 18일자. 41) 사월혁명연구소 편, í��한국사회변혁운동과 4월 혁명 ②��, 한길사, 1990, 110-11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