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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장 제1공화국과  4‧19혁명 325 1편 정치 신파가 대항후보를 출마시켰다. 여러 정당으로 나뉘어져 있던 혁 신세력은 연합공천을 모색하였으나 실패로 돌아갔으며, 사회대중 당을 중심으로 1백여 명의 후보가 출마하였다.34) 안동에서도 보수 정당인 민주당과 독립노농당, 혁신 정당인 사 회대중당과 한국사회당, 그리고 무소속 후보가 대거 출마하였다. 안동 갑구에는 11명의 후보가 출마하여 이승만 대통령의 저격사건 으로 옥고를 치러다가 석방된 무소속의 김시현이 당선되었으며, 을 구에서는 7명의 후보가 출마한 가운데 민주당의 박해충朴海充이 당 선되었다.35) 7‧29 총선 결과 민주당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으 며, 8월 23일 국회에서 대통령에 윤보선尹普善, 국무총리에 장면張勉 이 선출되어 제2공화국이 출범하였다. 한편 4‧19혁명기에 안동에서는 그동안 억눌려 있었던 각계각 층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먼저 학생 들은 교육 환경의 개선과 학내 민주화를 요구하는 운동을 펼쳤다. 예안고등학교 학생들은 부족한 학교 시설과 교사의 부족 등 열악 한 교육 환경의 개선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학교 당국이 거부하자 학생 전원이 동맹휴학에 들어갔다.36) 안동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 이 교직원과 학교운영위원회가 모의하여 교복비를 횡령한 사실을 34) 중앙선거관리위원회, í��대한민국선거사(1968년 증보판)��, 1968, 499-500쪽. 35)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역대 국회의원 선거상황��, 1989, 403-404쪽. 36) 「예안고교생 맹휴, 교실 부족 등 호소」, 《대구일보》 1960년 5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