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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1편 정치 1 장 위정척사운동 고종의 강력한 거부와 한계원이 탄핵되면서 더욱 확대되어 많은 연루자들이 체포되거나 혹형을 당하였다. 이 때 연루된 사람들은 대부분 남인이었다. 이들은 처형되거나 원지정배遠地定配되었을 뿐 만 아니라 한계원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대원군의 실세 후에도 조정에 남아 있던 남인들도 철저히 제거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대 원군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인 셈이었다. 이러한 사정에서 이 사건은 왕비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기도 하였다. 이 로써 영남 유림의 척사운동도 사실상 종결되게 되었다.13) 2절 만인소의 유생과 경비 척사만인소는 안동이 중심이 되어 영남 유림 전체를 망라한 운 동이었다. 따라서 많은 인적‧물적 자원을 필요로 하였다. 만인소 는 준비단계에서 상경봉소하기까지 수 십일이 걸렸고, 특히 상소가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그들의 주장이 수용되지 않을 경우엔 3~4 차에 걸쳐, 몇 달동안 지속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에는 소수들이 유배되기 마련이었다. 13) 정진영, 앞의 논문 참조.